교보문고에 들어서면 특별한 향이 난다. 거대한 ‘책의 숲’을 거닐며 은은한 나무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서점 전체에 퍼지는 피톤치드와 삼나무 향이 싱그럽다. 책방 특유의 종이와 잉크향, 묵향과 고서향까지 느껴진다.

교보문고가 개발한 이 향기의 이름은 ‘책향(冊香·The scent of page)’이다. 신선한 시트러스와 피톤치드, 천연 소나무 오일을 서점 분위기에 맞게 조향(調香)했다. 첫 향은 베르가모트와 레몬, 중간 향은 유칼립투스와 로즈마리, 끝 향은 삼나무와 소나무로 조율했다고 한다.

어제도 ‘책향’과 함께 한나절을 보냈다. 향이 넘치지 않고 순해서 좋았다. 생텍쥐페리 소설 《인간의 대지》에 나오는 ‘향처럼 퍼져 있는 오래된 도서관 냄새, 이 세상 향수를 죄다 가져온 듯한 향기로운 냄새’ 같았다.

3년 반 걸쳐 완성한 후각 서비스

방문객들도 “부드러운 숲 향기 속에서 책을 읽고 둘러볼 수 있어 편안하다”고들 했다. 어떻게 이런 향기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책향’ 아이디어와 개발을 주도한 김성자 고객마케팅담당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고(故) 신용호 창립자의 철학과 교보문고 독자들의 향기로운 만남을 돕기 위해 2014년 말부터 3년 반에 걸쳐 향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전문 조향업체와 함께 석 달간 시제품을 만든 뒤 테스트를 거쳐 2015년 판교점 개점 이벤트로 첫선을 선보였다. 이후 전국 35개 매장 중 광화문, 강남, 잠실, 울산, 대전, 수원 광교 등 12개 점에 향기 서비스를 적용했다.

처음에는 향이 너무 진하거나 매장에 고루 퍼지지 않아 걱정했다. 공조 시스템 가동 후 향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만 반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교보문고 향을 어디에서 살 수 있느냐”는 문의가 쏟아졌다. 지난해 10월 분당점을 열면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한 고급 책향 디퓨저와 초 200여 개는 3주 만에 동이 났다.

수요가 급증하자 일반인을 위한 상품화에 나섰고, 이달 초 책향 시리즈 제품을 내놓았다. ‘향기는 책을 깨우고 책은 향기를 품는다’는 문구와 함께 디퓨저, 향초뿐만 아니라 룸스프레이 등으로 종류도 늘렸다.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상품화도

그동안 패션, 화장품, 호텔 등 일부 업계에서 자체 향을 개발한 적은 있지만 서점계에서는 교보문고가 처음이다. 향기는 고대부터 심신을 정결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20세기 들어서는 향기를 활용한 치유 효과까지 입증됐다. 후각은 감정과 기억뿐만 아니라 행복감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인간 감정의 75%가 후각에 좌우된다고 한다.

팜 엘렌 미국 조지아주립대 교수는 “다른 감각과 달리 후각은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먼저 반응한다”고 설명한다. 후각이 마비되면 미각까지 잃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향수》의 가이아르 부인이 사고로 후각을 잃은 뒤 미각을 상실한 것도 그런 예다.

책은 눈으로 읽을 때의 시각과 귀로 즐기는 청각, 손으로 만지는 촉각, 코로 느끼는 후각, 입으로 음미하는 미각을 한 데 아우르는 정신 문화의 결정체다. 예부터 ‘꽃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 향기는 천 리를 가며, 사람 향기는 만 리를 간다(花香百里 酒香千里 人香萬里)’고 했다. 그 인향(人香)의 싹이 책향(冊香)에서 나온다.

책의 몸이 나무라면 책의 체취는 향기다. 향기로운 서점이야말로 문향(文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책 읽는 사람에게 만 리까지 가는 향기가 나는 것도 이런 이치와 닮았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