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N'T CALL IT REGULAR'
바롤로의 대표적 브랜드 피오 체사레는
레귤러라는 말을 쓰지 않아 라벨에
이런 문구를 새겼다
국가 최고 등급 바롤로는
'3년 숙성'을 法으로 정해
반드시 2년은 오크나
다른 나무통에서 숙성한다
"눈에 보이면 사라!"… 파올로 스카비노 '브릭 델 피아삭'
파커 포인트 100점… '카사노바 디 네리' 2010년 빈티지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 도착해서 피에몬테의 주요 와인 산지인 알바(Alba, 토리노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지역까지는 육로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국인들도 대개는 토리노 공항 대신 이 루트를 이용한다. 이동하면서 이탈리아에서 가장 긴 포강과 그 유역에서 자라는 벼를 볼 수 있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아직 모내기 전이라 벼를 볼 수 없었다. 이 육로는 드라이브하기 상당히 좋다. 길이 잘 닦여 있으며 무엇보다 경관이 최고다. 밀라노-토리노(알바) 라인은 우측, 반대 라인은 왼쪽이 유리하다. 바로 알프스의 연봉(連峰)이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에 눈을 인 연봉은 꿈처럼 펼쳐진다. 특히 저녁놀이 질 때가 압권인데, 하얀 눈을 뒤집어쓴 봉우리들이 황금색 모자로 갈아 쓰기 시작하는 시간대다. 절로 탄성이 나온다.


바롤로 와인은 한 마을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알바를 중심으로 한 11개의 마을에서 생산된다. 라 모라, 바롤로, 세라룽가 달바(Serralunga d’Alba), 몬포르테 달바(Monforte d’Alba), 카스틸리오네 팔레토(Castiglione Falleto) 5개 마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을마다 타닌의 강도와 부드러움, 세밀한 향과 밀도의 차이를 지니고 있어서 생산자는 블렌딩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는 아예 싱글 빈야드라고 하는 독립적인 작은 밭에서 나는 네비올로로만 생산하는 와인이 있다. 이런 다채로운 바롤로를 비교하고 맛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우아하고 세련된 바롤로의 명성
바롤로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이라 부른다고 했는데, 국가 등급에서도 최고이며 병당 평균 가격에서도 당연히 이탈리아 톱이고 국제시장 가격에서도 최상위에 랭크된다. 2010년까지 법률 기준으로는 출시 전에 3년의 숙성을 거쳐야 시장에 낼 수 있으며, 그중 2년은 반드시 오크나 다른 나무통 숙성을 해야 한다. 리제르바(riserva)라고 이름 붙은 것은 62개월의 숙성 기간이 필요한데, 모든 와이너리가 리제르바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피오 체사레 브랜드 같은 경우는 아주 오래 숙성한 것도 따로 리제르바라고 이름붙이지 않는다. 자신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랄까.

현장에서 이들의 와인을 시음했다. 역시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힘과 섬세함, 바롤로다운 개성을 고루 압축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다. 대개 요즘 바롤로는 싱글 빈야드를 강조하거나, 리제르바 등으로 가격을 차별화하는 게 현지의 추세다. 그래서 레귤러(보통)나 엔트리급의 바롤로는 아무래도 품질이 최상급에 못 미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즉, 대중적(그래도 비싸긴 하다)인 바롤로와 고급 바롤로의 투 트랙 전략을 쓰는데, 피오 체사레의 경우는 레귤러라는 말을 아예 쓰지 않는다. 그래서 라벨에 ‘PLEASE DON’T CALL IT REGULAR’라는 문구를 새기고 있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바롤로에 대한 신뢰를 담은 일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오너는 피오 보파(Pio Boffa)다. 그는 어머니인 로지 보파(Rosy Boffa)가 체사레 피오의 유일한 손녀로 혈족 관계다.
유쾌하고 아주 정력적인 사람으로 취재팀을 맞아주었다. 현재의 유명한 바롤로의 명성은 그에 의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로마시대 유적이 있는 와이너리의 지하 4층에는 100년 전후의 와인이 즐비한데, 지금 개봉해도 강력한 힘과 맛을 유지하고 있다. 좋은 와인이란 결국 좋은 포도와 양조기술의 결합일 텐데, 이들의 오랜 노하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테이스팅했다. 역시 ‘레귤러’라는 이름을 거부한다는 일반 바롤로부터 비범하다. 이들이 생산하는 와인은 기본적으로 응축력이 강해 놀라운 경험을 준다.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나 바르베라(Barbera) 같은 와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당한 가격대를 보여준다.
화이트 와인, 가비 좋은 향과 기분 좋은 목 넘김


토스카나, 와인과 태양의 로망

이 몬탈치노 와인 중에서도 주목할 와이너리가 있다. 세련되며 고상하고 급진적인 와이너리, 바로 카사노바 디 네리(Casanova di Neri)다. 지역에서 비교적 역사가 짧은 생산자로 1971년 지오반니 네리가 와이너리를 설립한 뒤 1978 첫 빈티지를 생산했다. 몇 백년이 흔한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짧은 역사다. 그러나 놀라운 건 2001년 빈티지였다. 미국의 저명한 와인잡지 와인 스펙터에서 100점으로 1위를 차지해버린 것. 2010년 빈티지는 로버트 파커 포인트 100점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떴다. 역시 이 무렵 생산된 것들은 “보이면 사라!”가 적용되는 와이너리다.
이 와이너리 와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한국에도 애호가가 많다) 건 테누타 누오바(Tenuta Nuova). 2대손인 지아코모 네리가 발견한 곳으로 그 누구도 와인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던 토양에 산 지오베제를 심어 이 믿을 수 없는 와인을 만들어냈다. 현지 와이너리에서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기왕이면 두 병들이(1.5L)인 매그넘을 살 것! 보관해두면 레귤러 사이즈보다 훨씬 더 값이 뛴다.
취재팀은 마지막 일정으로 키안티 클라시코의 명가를 찾았다.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건 역시 ‘검은 수탉’ 문장을 쓰는 키안티 클라시코가 아닌가. 보통 한국에서 5만원대에서 출발해 20만원대까지 이르는 넓은 가격대의 와인이다. 그만큼 품질도 차이가 크다. 로카 디 몬테그로시(Rocca di Montegrossi)는 학자 풍모에 신사적인 멋을 지닌 소유주 마르코 리카솔리가 지휘한다. 이 가문은 놀랍게도 1400여 년간 와인을 만들어왔다. 한반도 통일신라 초기에 해당되는 시기다. 당시 유럽은 빈번한 영토 싸움으로 피폐해져 있었고, 리카솔리 가문의 사람들이 마을을 수호하는 데 큰 역할을 맡으며 주민들에게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와이너리가 있는 몬티(Monti) 지역은 ‘키안티의 그랑 크뤼 밭’이라 불릴 만큼 양질의 포도가 생산되는 곳. 로카 디 몬테그로시는 친환경 농법으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제공된 와인 중에서 먼저 로제와인(이탈리아에선 로사토라고 부른다)이 입에 확 붙는다. 보통 이탈리아에서는 많이 만들지 않는 와인이다. 경쾌하고 기분 좋은 질감과 개운한 향이 충만하다. 음식과 함께 먹기에 이처럼 좋은 와인도 드물 것 같다. 물론 이 와이너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로카 산 메르첼리노(Rocca San Mercellino)도 빠질 수 없다. 고기 요리에 이처럼 좋은 하모니를 주는 와인도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