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서정을 세련된 모더니즘으로 승화한 수화 김환기 화백(1913~1974)은 한평생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현대회화의 독창성을 구축했다. 일본 유학 시절과 6·25전쟁 시기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할 때까지는 주로 구상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면 미국에선 심오한 추상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1974년 작고할 때까지 뉴욕에서 활동한 그는 당시 미국 화단을 주름잡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진가를 증명해 보였다.

국제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사처럼 싸우며 작업에 몰두한 그는 미국 화가들이 액션페인팅, 색면,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형태를 선보일 때 한국적 서정주의를 접목한 단색화 형태의 점화를 쏟아냈다. 고국산천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예술에 대한 열망을 담아 거대한 면포에 색점을 찍고 또 찍었다.

1970년 1월27일 뉴욕 작업실에서 그는 일기장에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라고 썼을 만큼 일말의 긴장과 희망을 놓지 않았다.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1957년작 ‘영원의 노래’.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김환기 화백의 1957년작 ‘영원의 노래’.
◆국내 최대 규모 회고전

김 화백의 이런 열정적인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오는 8월10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펼쳐진다. 평생 그림에 몰두한 작가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김 화백의 작업 시기를 따라 전시장을 △도쿄시대(1933~1937년)와 서울시대(1937~1956년) △파리시대(1956~1959년)와 서울시대(1959~1963년) △뉴욕시대(1963~1974년)로 나눠 유화, 드로잉, 과슈 등 108점을 걸었다. 연표와 사진, 도록, 서적, 표지화, 소품, 화구, 영상 등 아카이브 100여 점까지 더하면 역대 김환기 전시 중 최대 규모다. 보험가액이 낮춰 잡아도 480억원에 달한다. 실제 작품 총액은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미술관 측은 “대부분 출품작은 환기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개인 소장가들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며 “김 화백 작업의 정수로 꼽히는 전면 점화가 나오기까지의 여정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푸른색과 빨간색 점화 등 눈길

전시장에는 전면 점화를 비롯해 반추상화 작품, 고향을 향한 기억에 대한 구상 작품들이 어떤 시보다 강렬하게 바삭거린다.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해 대상을 차지한 푸른색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비슷한 작품 ‘10-Ⅷ-70 #185’는 뉴욕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의 오묘함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고국 사람과의 인연을 점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서양 재료인 유화 물감을 썼지만 캔버스천이 아니라 광목을 바탕으로 했기에 번짐과 스밈, 농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김환기의 점화가 ‘비싼’ 그림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빨간색 점화 ‘1-Ⅶ-71 #207’은 푸른색 점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가르쳐 준다.

도자기, 매화, 구름, 학, 산과 달 등 우리 자연과 전통 기물을 추상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작품도 내걸렸다. 매화가 꽂힌 항아리 옆에 서정주 시를 적은 1954년작 ‘항아리와 시’는 지난 3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김 화백의 구상 가운데 최고가(39억3000만원)를 기록했다. 마치 달항아리를 스스로 발화하는 하얀 등불처럼 그려 시와 미술의 절묘한 조화를 꾀한 게 흥미롭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인 1957년작 ‘영원한 노래’는 세로로 긴 화폭에 십장생 소재인 학과 달, 사슴, 구름, 산 등을 자유롭게 배치해 균형감을 살려냈다.

◆일본 유학시절 그림도 등장

서구 전위미술을 익힌 일본 유학시절 작품도 나와 있다. 고향 전남 신안에 대한 추억을 포착한 1936년작 ‘집’은 샛노란 바탕에 계단과 문, 항아리 등을 간결하게 담아냈다. 원근법을 없애고 배경의 색채를 하나로 통일하면서 집의 형태를 평면화해 추상성을 아울렀다. 한국 최초 추상화 ‘론도’(1938) 탄생을 예감케 하는 작품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대부분 미술가들이 독자적인 세계를 일단 구축하면 그 후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비슷한 작품을 되풀이 제작하는 데 비해 김 화백은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말년에는 그 노력과 재능이 완전히 만개하면서 빛을 발한 화가”라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