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부 정책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부 정책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대북 관계 개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다시피 해오던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경제 지표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28일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고용과 소득분배 지표 악화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경제 거시지표와 국민들의 체감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경제 챙기기 나선 문 대통령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안건은 ‘경제동향 점검’이었다. 그동안 줄곧 대북 문제나 정치 이슈를 주로 논의해왔던 것에 비춰보면 다소 이례적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 스스로 최근 경제 관련 실물 지표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는 점을 심상치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용·분배 악화에 문 대통령 '당혹'… "경제정책, 국민 공감 못얻어"
문 대통령 언급대로 최근 고용 사정이 갈수록 좋지 않다. 월간 취업자 증가폭은 올 1월까지만 해도 평균 30만 명대를 유지하다 2월부터 3개월 연속 10만 명대로 추락했다. 여기에다 현 정부 들어 개선 추세를 보이던 분배지표마저 1분기에 악화됐다. 작년 3, 4분기 연속 증가하던 소득 하위 20%의 가계 소득이 1분기에 8.0% 감소(전년 동기 대비)로 돌아선 것이다. 고용과 분배는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지표다. 이들 지표가 망가진다는 것은 정부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29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정책라인을 모두 소집해 비공개로 긴급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를 열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정책 기조 변화 오나

이런 상황에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정책 기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을 주문한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소득주도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J노믹스’(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에 뭔가 변화가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지표와 체감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대통령의 말이 곧 ‘체감 못하는 정책은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 방향이 완전히 바뀌지 않더라도 미세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한 참모는 “정책 기조 변화로 받아들이는 것은 억측”이라며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큰 방향을 유지하면서 세세한 정책이 맞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 정책은 긴 호흡이 필요하므로 단기적 성과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한 대목도 최근 단기 경제 지표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정책 방향이 맞다면 멀리 보고 일관되게 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는 게 참모들 설명이다.

◆혁신성장 힘 받을 듯

그렇더라도 문 대통령이 “일자리와 소득의 양극화 완화를 위해 정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국민의 공감을 얻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 점은 정책 참모들에 대한 질타의 성격도 있다는 게 청와대 일각의 분석이다.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경계한 발언이라는 설명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계기로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경제정책의 또 다른 축인 혁신성장이 더욱 힘을 받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와 내각 내에 분배를 강조하는 ‘소득주도 성장파’와 성장에 무게중심을 둔 ‘혁신성장파’가 있는데 최근 들어 혁신성장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과 함께 혁신성장도 주장하고 있는데 두 정책은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많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에는 이런 고민도 묻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태훈/조미현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