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피력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의 두 번째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여러 번, 분명히 드러냈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의지를 밝혔는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비핵화 실현 방법에 대해서도 “미국과 북한이 협의할 문제”라고 돌렸다. 그러니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가 강하다”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을 내세워 한국과 국제사회를 농락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한 실행 계획은 내놓지 않은 채 ‘한반도 비핵화’만 반복해서 언급하는 속셈과 배경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북한은 1976년 비동맹 정상회담에서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제기한 뒤 꾸준히 선전·선동에 나섰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제기하는 의도는 1980년대 말 잇따라 발표한 성명에 잘 드러나 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한반도 내에서 핵무기 생산·보유·반입뿐 아니라 적재 가능한 항공기나 함선의 통과·착륙·기항을 금지하고, 핵우산 제공 협약과 핵무기가 동원될 수 있는 일체의 군사훈련도 금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 사용권을 가진 주한미군의 철수가 선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제공하는 미군의 핵우산 철회 주장은 한·미동맹 파기를 노린 것이다. 북한의 요구 끝에 남북한은 1991년 핵무기 제조·보유·사용 금지 등 내용을 담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한국 내 주한미군 전술핵무기는 완전히 철수했다. 반면 북한은 약속을 하나도 안 지켰다. 한국만 비핵지대화가 됐고, 북한은 수십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게 김일성의 ‘한반도 비핵화’ 전술이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이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이라고 강조하는 실체이기도 하다.

‘한반도 비핵화’란 말에 환호하고, 맞장구 칠 때가 아니다.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 폐기’여야 한다. 북한의 실체를 직시하고 미국 등 우방국가들과 굳건하게 공조해 김정은이 빠른 시일 내에 완전하게 핵폐기를 하도록 이끄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