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형 에너지기업인 차이나에너지리저브&케미컬그룹(CERCG)의 자회사가 채권 원리금 상환에 실패하면서 이 기업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담은 국내 단기채 펀드 투자자도 단기간에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신용평가사가 CERCG 자회사를 공기업으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완전 판매 논란으로도 번지고 있다.
◆펀드가 담은 ABCP 동반 부도 우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TB자산운용은 지난 29일부터 ‘KTB 전단채’의 환매와 추가 설정을 막고 있다. 골든브릿지자산운용도 ‘골든브릿지 으뜸단기’ ‘골든브릿지 스마트단기채’ 펀드 환매를 금지했다. 이들 펀드는 CERCG가 보증한 ABCP에 투자하고 있다.

KTB자산운용 관계자는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일부 채권의 등급이 내려가 부실 자산으로 분류되면서 단기간에 큰 손실을 반영해야 했다”며 “손실이 반영되기 전에 투자자들이 나고 들면 남은 투자자만 피해를 입을 수 있어 환매를 막았다”고 설명했다.

CERCG는 28일 역외 자회사인 CERCG오버시즈캐피털이 발행하고 자사가 지급보증한 3억5000만달러 규모 달러표시 채권 원리금을 갚지 못했다고 홍콩 거래소에 공시했다. 문제는 최근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이 CERCG의 또 다른 자회사인 CERCG캐피털이 발행한 1억5000만달러 규모 사모 달러채를 사들인 뒤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ABCP를 발행해 국내 기관이 1650억원을 투자했다는 점이다.

공모펀드 가운데는 ‘KTB 전단채’ ‘골든브릿지 으뜸단기’ ‘골든브릿지 스마트단기채’ 세 펀드가 이 ABCP를 담고 있다. 28일 부도를 맞은 채권과 발행자는 다르지만 CERCG가 지급보증 의무 이행에 실패하면서 동반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날 ABCP 신용등급을 A20(7개 투자 등급 중 상위 3위 등급)에서 상환 능력이 불투명하다는 의미의 C로 낮췄다.

◆KTB운용 등 관련 펀드 환매 막아

투자한 ABCP의 등급이 낮아지자 이를 편입한 공모펀드들은 부실 자산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해당 투자금을 손실처리하고 있다. KTB자산운용은 펀드가 편입한 ABCP 200억원어치가 동반 부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투자금의 80%를 손실처리했다. 이에 따라 ‘KTB 전단채’ 펀드 수익률은 30일 하루 새 3.88% 급락했다. 수익률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채권형 펀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KTB자산운용 관계자는 “펀드 기준가에 손실을 반영한 만큼 31일부터는 환매 신청을 받을 예정”이라며 “ABCP 발행을 주관했던 증권사들이 자금 회수를 협의 중인 만큼 회수에 성공하면 투자자 손실폭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든브릿지자산운용도 손실 반영 폭과 시점을 논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상품 판매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가 공기업으로 보기 힘든 CERCG를 중국 지방 공기업으로 분류해 신용등급을 내줬는데, ABCP를 발행한 주관사가 이를 알고도 투자자에게 공기업 발행 상품으로 판매했다면 문제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통상 중국 공기업으로 분류하려면 국가나 지방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며 “CERCG는 중국 베이징시가 100% 출자한 자회사가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ABCP를 발행한 주관사가 이를 파악하고 있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 유동화전문회사(SPC)가 매출채권, 리스채권, 회사채, 정기예금 등의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 자산을 유동화해 회사채 형태로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과 달리 별도의 등록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