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노후자금 62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이 10개월째 최고투자책임자(CIO)인 기금운용본부장을 구하지 못해 기금 운용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공모 절차를 통해 유력 후보 3인을 추렸지만 한 달 넘게 최종 후보를 가리지 못하자 공모 절차를 다시 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7월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사직한 뒤 국민연금은 올해 2월19일부터 3월5일까지 16명의 지원자를 받았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이사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국민연금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임명한다. 기금이사추천위는 지난달 3일부터 지원자 가운데 8명의 면접을 치렀다. 4월 중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와 윤영목 제이슨인베스트먼트 고문, 이동민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투자운용부장 등 3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이달 초중순 곽 전 대표가 차기 CIO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국민연금은 최종 후보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장고를 거듭하는 건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낙마와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김 전 원장이 ‘셀프후원금’ 등 국회의원 시절 비위 행위로 사퇴한 뒤 주요 인사와 관련한 청와대의 검증 기준이 강화됐고, 강화된 새 기준이 국민연금 CIO 인선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이 사퇴한 시점은 4월16일로 기금이사추천위가 후보 3명을 추천한 때와 겹친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이 새로운 검증 기준에 맞춰 CIO 공모 절차를 다시 밟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인선작업이 장기화되면서 기금운용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초 본부를 전북 전주로 이전한 뒤 운용역 이탈과 투자전문가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가세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투자전문가를 뽑아야 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장관급 검증 기준을 적용하려 들면 국민 노후자금의 투자수익 극대화라는 기금운용본부의 설립 취지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