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장서 놀던 농기계 발명왕… 100억 회사 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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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네이버 FARM
대호 김중호 대표
땅 고르는 '오리발 써레'로 대박
1년 5000여대 판매…점유율 50%
농기계 특허 30여개 보유
24년前 트랙터 부착 콤바인 개발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 대통령상
2016년 다기능 트랙터로 또 수상
"리모콘으로 농사짓는 시대 열 것"
대호 김중호 대표
땅 고르는 '오리발 써레'로 대박
1년 5000여대 판매…점유율 50%
농기계 특허 30여개 보유
24년前 트랙터 부착 콤바인 개발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 대통령상
2016년 다기능 트랙터로 또 수상
"리모콘으로 농사짓는 시대 열 것"
전남 장흥에 살던 소년의 부모님은 농사일로 늘 바빴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항상 빚에 시달렸다. 값비싼 농기계 영향이 컸다. 비싼 농기계 부담을 줄일 수 없을까. 트랙터 앞에 작업기 형태로 콤바인(곡물 수확장치)을 붙이면 농민들이 수확기계를 따로 사지 않아도 될 텐데. 소년은 이 아이디어를 고교 2학년 때인 1994년 실행에 옮긴다. 그리고 그가 개발한 트랙터 부착형 콤바인은 그해 전국발명품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농기계업체 대호의 김중호 대표(사진) 이야기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2016년 김 대표는 또 한 번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탔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합쳐보자는 학창 시절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개발한 다용도 트랙터 ‘로보랙터’로 받았다. 김 대표를 충북 옥천 본사에서 만났다.
◆매출 100억원 농기계업체 일군 농촌 소년
대호는 직원 90여 명에 연매출이 100억원가량이다. 대표 제품은 트랙터가 아니라 써레(논바닥의 흙덩이를 부수고 평평하게 하는 농기구)다. 전국 써레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써레만 1년에 5000대씩 판다. 1997년 가족과 함께 회사를 세운 직후부터 판매를 시작해 매년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출시하고 있다. 트랙터에 밀린 물이 다시 안쪽으로 모이도록 특수 제작한 ‘오리발 써레’는 농민들에겐 고유명사가 됐을 정도로 히트를 쳤다.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광주광역시에 있던 본사 겸 사업장을 2004년 옥천으로 옮겼다.
대호 제품은 모두 김 대표가 개발한 것들이다. 농기계 관련 특허만 30여 개. 이앙기 빼고는 안 만들어본 농기계가 없을 정도다. 로터베이터(표토만 부수는 쟁기), 배토기(이랑 사이의 흙을 작물 밑으로 긁어모아주는 장치), 크레인 등. 어렸을 때 동네 폐차장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고물을 주워다 조립해 농기계를 직접 제작했다. 이런 김 대표의 성장 과정이 지금 대호의 기반이 됐다.
대표 상품인 써레도 김 대표가 고교생일 때 고안했다. 농민들이 논을 고르는 일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수업 시간에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써레 완제품을 출시했다. 지역 ‘기계장이’들 사이에서 쓸 만한 제품이 새로 나왔다고 소문이 났다. 마침 기계를 이용한 모내기(이앙)가 확산되면서 땅을 잘 고르는 써레 수요가 늘어날 때였다. “맨 처음에 74대를 만들어 팔았는데 입소문으로 금방 동이 났습니다.” 그다음 해엔 284대, 또 그다음 해에는 400대 넘게 써레를 팔았다. 김 대표가 2016년 대산농촌문화상을 받은 것도 이 써레를 개발해 보급한 점을 인정받아서다.
◆트랙터가 진짜 로봇이 되는 날까지
어느 순간부터 김 대표는 주변에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사업이 한창 잘되고 있던 2010년 그는 트랙터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의 오랜 꿈이었다. 상용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 대표가 처음 트랙터를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대부분 말리거나 비웃었다. 부착기를 만드는 중소업체가 4륜 자동차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2010년 7월 시제품을 냈다. 첫 트랙터는 200m를 채 가지 못하고 멈춰섰다. 수백 번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새로 제작한 시제품만 수십 개. 도안만 100번 넘게 바꿨다. 엔진도 10번 넘게 교체했다. 5년간의 도전 끝에 다기능 트랙터 ‘로보랙터’ 개발에 성공했다. 로보랙터는 로봇과 트랙터의 합성어다. 팔을 탈부착하는 방식으로 포클레인과 지게차, 스키드로더 기능을 트랙터에 합쳤다. 운전석을 180도 돌게 만들어 후진 작업을 할 때 편의성을 높였다.
김 대표는 오랜 꿈의 첫발을 이제야 뗀 것이라고 했다. 로보랙터는 출시 후 3년간 72대가 팔렸다. 대량 생산이 안 되다 보니 돈도 안 된다. 손으로 하나하나 조립해서 나가는데 아직까진 주문을 받을수록 손해라고 했다. “몇 년간 부족한 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처음보다는 많이 안정됐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처음부터 우리 트랙터를 믿고 사주신 분들께 감사할 뿐이죠.”
그의 꿈은 로보랙터를 진짜 로봇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트랙터가 발전해온 것보다 더 많은 발전을 로보랙터 안에서 이루고 싶다고 했다. “논에서 일하는데 직접 트랙터를 타야 하나요. 논두렁에 파라솔이랑 의자를 펴놓고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리모컨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옥천=FARM 고은이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268268299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2016년 김 대표는 또 한 번 대한민국발명특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탔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합쳐보자는 학창 시절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개발한 다용도 트랙터 ‘로보랙터’로 받았다. 김 대표를 충북 옥천 본사에서 만났다.
◆매출 100억원 농기계업체 일군 농촌 소년
대호는 직원 90여 명에 연매출이 100억원가량이다. 대표 제품은 트랙터가 아니라 써레(논바닥의 흙덩이를 부수고 평평하게 하는 농기구)다. 전국 써레 점유율이 50%가 넘는다. 써레만 1년에 5000대씩 판다. 1997년 가족과 함께 회사를 세운 직후부터 판매를 시작해 매년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출시하고 있다. 트랙터에 밀린 물이 다시 안쪽으로 모이도록 특수 제작한 ‘오리발 써레’는 농민들에겐 고유명사가 됐을 정도로 히트를 쳤다.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광주광역시에 있던 본사 겸 사업장을 2004년 옥천으로 옮겼다.
대호 제품은 모두 김 대표가 개발한 것들이다. 농기계 관련 특허만 30여 개. 이앙기 빼고는 안 만들어본 농기계가 없을 정도다. 로터베이터(표토만 부수는 쟁기), 배토기(이랑 사이의 흙을 작물 밑으로 긁어모아주는 장치), 크레인 등. 어렸을 때 동네 폐차장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고물을 주워다 조립해 농기계를 직접 제작했다. 이런 김 대표의 성장 과정이 지금 대호의 기반이 됐다.
대표 상품인 써레도 김 대표가 고교생일 때 고안했다. 농민들이 논을 고르는 일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수업 시간에 아이디어 노트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써레 완제품을 출시했다. 지역 ‘기계장이’들 사이에서 쓸 만한 제품이 새로 나왔다고 소문이 났다. 마침 기계를 이용한 모내기(이앙)가 확산되면서 땅을 잘 고르는 써레 수요가 늘어날 때였다. “맨 처음에 74대를 만들어 팔았는데 입소문으로 금방 동이 났습니다.” 그다음 해엔 284대, 또 그다음 해에는 400대 넘게 써레를 팔았다. 김 대표가 2016년 대산농촌문화상을 받은 것도 이 써레를 개발해 보급한 점을 인정받아서다.
◆트랙터가 진짜 로봇이 되는 날까지
어느 순간부터 김 대표는 주변에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사업이 한창 잘되고 있던 2010년 그는 트랙터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의 오랜 꿈이었다. 상용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 대표가 처음 트랙터를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대부분 말리거나 비웃었다. 부착기를 만드는 중소업체가 4륜 자동차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2010년 7월 시제품을 냈다. 첫 트랙터는 200m를 채 가지 못하고 멈춰섰다. 수백 번을 뜯어고치는 작업을 반복했다. 새로 제작한 시제품만 수십 개. 도안만 100번 넘게 바꿨다. 엔진도 10번 넘게 교체했다. 5년간의 도전 끝에 다기능 트랙터 ‘로보랙터’ 개발에 성공했다. 로보랙터는 로봇과 트랙터의 합성어다. 팔을 탈부착하는 방식으로 포클레인과 지게차, 스키드로더 기능을 트랙터에 합쳤다. 운전석을 180도 돌게 만들어 후진 작업을 할 때 편의성을 높였다.
김 대표는 오랜 꿈의 첫발을 이제야 뗀 것이라고 했다. 로보랙터는 출시 후 3년간 72대가 팔렸다. 대량 생산이 안 되다 보니 돈도 안 된다. 손으로 하나하나 조립해서 나가는데 아직까진 주문을 받을수록 손해라고 했다. “몇 년간 부족한 점을 해결해 나가면서 처음보다는 많이 안정됐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긴 하지만요. 처음부터 우리 트랙터를 믿고 사주신 분들께 감사할 뿐이죠.”
그의 꿈은 로보랙터를 진짜 로봇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트랙터가 발전해온 것보다 더 많은 발전을 로보랙터 안에서 이루고 싶다고 했다. “논에서 일하는데 직접 트랙터를 타야 하나요. 논두렁에 파라솔이랑 의자를 펴놓고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리모컨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옥천=FARM 고은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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