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코리아 포럼 2018] "정부 주문형 과학정책이 기초연구의 다양성·창의성 가로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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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들의 '과학기술 코리아' 를 위한 조언
지식 공유 속도 빨라져… 연구 네트워크化 중요
연구 성과, 지표가 아닌 내용으로도 판단해야
지식 공유 속도 빨라져… 연구 네트워크化 중요
연구 성과, 지표가 아닌 내용으로도 판단해야
“학생들이 질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한국 교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악셀 팀머만 기초과학연구원 기후물리연구단장)
“정부 주도의 주문형 과학정책이 기초연구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막는다.”(조혜성 아주대 의대 교수)
국내외 저명 과학자들이 31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8’에서 내놓은 과학기술 정책 진단이다. 이날 포럼의 첫 번째 세션에서는 ‘과학기술의 다양성,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사회를 맡은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모바일 디바이스 보급으로 초연결사회가 되면서 사회·경제·산업 전반의 구성요소들이 모두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다양성이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유로운 연구 여건 조성해야”
‘기초연구 다양성,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조혜성 교수는 정부의 과제 중심 지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 과학기술은 국내 산업의 고도성장에 기여했다”면서도 “정부 연구개발(R&D) 투자의 주요 목적이 ‘경제발전’에 지나치게 치중됐다”고 진단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보건·환경 개선, 일본은 대학 진흥 등에 R&D 예산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경제발전에 치중한 한국은 이들 나라와 비교해 과학자들이 기초연구에 매진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정부가 지원한 연구개발비 중 기초연구 비중은 6%에 그친 반면 특정 결과를 요구하는 주문형 기획연구사업 비중은 80%에 달했다. 조 교수는 “혁신기술, 경제발전, 노벨상은 기초연구의 산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며 “과학과 기술의 특성을 구분하는 R&D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택과 집중’으론 힘들어
악셀 팀머만 단장은 ‘지구의 탈탄소화-실천하는 과학을 위한 한국의 기회’라는 주제 발표에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팀머만 단장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2016년 체결된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기초과학이 ‘실행가능한 과학’으로 발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의 성(性)격차 지수가 하위권으로 불평등하다며 “과학 분야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높이려면 양성평등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도영 광주과학기술원(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는 ‘아이디어를 살리는 개인 연구, 한계를 돌파하는 집단 연구’를 주제로 기초연구 예산 배분 현황을 분석했다.
노 교수는 “기초연구는 과학자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에도 필요하다”며 “단순히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로 시작하지만 국방, 질병 치료, 환경 보호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연구는 크게 개인 연구와 집단 연구로 나뉜다. 정부는 올해 개인 연구에 1조1605억원, 집단 연구에 1988억원을 지원한다. 노 교수는 “개인 연구는 기초연구의 ‘풀뿌리’로 혁신의 바탕이 되고 집단 연구는 아이디어를 확장해 한계를 돌파하는 데 유용하다”며 “최근 지식의 공유 속도가 빨라졌고 집단지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개인 연구들을 네트워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구 획일화한 정치권도 책임
토론자로 나선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그동안 국내 과학계의 다양성을 파괴해온 정책이나 현 상황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R&D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을 집행한 공무원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를 강요한 정치인과 정치인을 뒷받침한 일부 과학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염 부의장은 “지금은 경제 패러다임이 빨리 변하고 어떤 새로운 지식이 나올지 쉽게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 자체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과학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연구 성과도 논문 인용 등의 지표가 아니라 내용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스트롱코리아
한국경제신문사가 2002년부터 17년째 이어가고 있는 과학기술 강국 캠페인. 스트(STRONG)이란 말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연구와 혁신(research & renovation)을 통해 과학기술 강국이란 목표(our national goal)를 실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정부 주도의 주문형 과학정책이 기초연구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막는다.”(조혜성 아주대 의대 교수)
국내외 저명 과학자들이 31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8’에서 내놓은 과학기술 정책 진단이다. 이날 포럼의 첫 번째 세션에서는 ‘과학기술의 다양성,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사회를 맡은 유명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모바일 디바이스 보급으로 초연결사회가 되면서 사회·경제·산업 전반의 구성요소들이 모두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다양성이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유로운 연구 여건 조성해야”
‘기초연구 다양성,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한 조혜성 교수는 정부의 과제 중심 지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 과학기술은 국내 산업의 고도성장에 기여했다”면서도 “정부 연구개발(R&D) 투자의 주요 목적이 ‘경제발전’에 지나치게 치중됐다”고 진단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보건·환경 개선, 일본은 대학 진흥 등에 R&D 예산을 집중 투자하고 있다. 경제발전에 치중한 한국은 이들 나라와 비교해 과학자들이 기초연구에 매진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정부가 지원한 연구개발비 중 기초연구 비중은 6%에 그친 반면 특정 결과를 요구하는 주문형 기획연구사업 비중은 80%에 달했다. 조 교수는 “혁신기술, 경제발전, 노벨상은 기초연구의 산물이지 목표가 될 수 없다”며 “과학과 기술의 특성을 구분하는 R&D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선택과 집중’으론 힘들어
악셀 팀머만 단장은 ‘지구의 탈탄소화-실천하는 과학을 위한 한국의 기회’라는 주제 발표에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팀머만 단장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2016년 체결된 파리 기후변화협약은 기초과학이 ‘실행가능한 과학’으로 발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의 성(性)격차 지수가 하위권으로 불평등하다며 “과학 분야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높이려면 양성평등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도영 광주과학기술원(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는 ‘아이디어를 살리는 개인 연구, 한계를 돌파하는 집단 연구’를 주제로 기초연구 예산 배분 현황을 분석했다.
노 교수는 “기초연구는 과학자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안보에도 필요하다”며 “단순히 지식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로 시작하지만 국방, 질병 치료, 환경 보호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연구는 크게 개인 연구와 집단 연구로 나뉜다. 정부는 올해 개인 연구에 1조1605억원, 집단 연구에 1988억원을 지원한다. 노 교수는 “개인 연구는 기초연구의 ‘풀뿌리’로 혁신의 바탕이 되고 집단 연구는 아이디어를 확장해 한계를 돌파하는 데 유용하다”며 “최근 지식의 공유 속도가 빨라졌고 집단지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개인 연구들을 네트워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구 획일화한 정치권도 책임
토론자로 나선 염한웅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그동안 국내 과학계의 다양성을 파괴해온 정책이나 현 상황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R&D의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을 집행한 공무원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를 강요한 정치인과 정치인을 뒷받침한 일부 과학자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염 부의장은 “지금은 경제 패러다임이 빨리 변하고 어떤 새로운 지식이 나올지 쉽게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 자체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는 “과학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연구 성과도 논문 인용 등의 지표가 아니라 내용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스트롱코리아
한국경제신문사가 2002년부터 17년째 이어가고 있는 과학기술 강국 캠페인. 스트(STRONG)이란 말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연구와 혁신(research & renovation)을 통해 과학기술 강국이란 목표(our national goal)를 실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