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자리, 저출산 대책을 위해 내년 ‘슈퍼 예산’ 편성을 예고한 데 이어 225조원에 달하는 기금 여윳돈까지 동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퍼붓기’ 논란으로 악화된 기금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기금 간 통합 등으로 효율화를 꾀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과정에서 기금의 고유 목적이 훼손되고 정책 목적의 ‘쌈짓돈’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일자리 대책에 슈퍼예산 이어 기금도 퍼붓나
◆“재정 더 풀겠다”

3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018년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소득주도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그에 따른 재원 마련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이를 위해 재정 투입을 큰 폭으로 늘리고 필요하면 기금에 손대는 방안까지 테이블에 올려졌다.

정부는 우선 일자리, 저출산 등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총지출 증가율을 당초 계획보다 높이기로 했다. 작년에 세운 ‘2017~2021년 국가재정운영계획’상 내년 증가율(5.7%)보다 높이겠다는 것이다. 올해 예산(428조8000억원)을 고려하면 내년 예산은 최소 453조3000억원 이상이 된다. 내년 경상성장률 4.8%(국회예산정책처 전망)를 뛰어넘는 ‘팽창 예산’이다. 중기(5년) 총지출 증가율은 2017~2021년 5.8%에서 2018~2022년 5.8%+α가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저출산, 고령화, 혁신성장 모두 적기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재정 확대 의지를 강조했다. 다른 참석자들도 정부가 재정을 더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회의 후 브리핑을 보면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가계소득 비중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기초연금 인상 시기를 앞당기는 등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고,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출 증가율을 큰 폭으로 올려야 한다. 당 차원에서 강력히 말씀드린다”고까지 말했다.

◆“필요하면 기금도 동원해야”

이날 참석자들은 67개에 달하는 각종 기금 중 일부를 통폐합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한 부처 내 여유가 있는 기금과 부족한 기금을 합쳐 쓰겠다는 의미다. 67개 기금의 여유자금 운용 규모는 올해 기준 225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가 각 사업을 위해 마련한 기금을 정책 목적으로 쌈짓돈처럼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금을 통폐합할 경우 기금 목적이 포괄적으로 바뀌면서 운용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어질 여지가 생긴다.

상당수 기금이 적자 상태에 빠졌거나 곧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 사업에 동원될 경우 건전성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용보험기금은 2020년부터 적자로 전환될 것이라는 게 기획재정부의 분석이다.

정부는 고용보험료를 올리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기업과 근로자가 절반씩 내는 실업급여 요율을 1.3%에서 1.6%로 인상하기로 한 데 이어 기업이 부담하는 고용안정 요율(0.25~0.85%)도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경봉/김일규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