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고 오는 12일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미국 주류 언론이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협상 의제로 못 박아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관련해 북한이 아무런 양보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부터 푸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북한에 ‘선전전의 승리’를 안겨줬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백악관에서 회동한 뒤 6·12 미·북 정상회담을 공식화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평가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즉각적인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대신 북한의 핵 동결을 장기화하는 길을 열어줬다”며 “이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4년 김일성 주석과 했던 합의와 근본적으로 같다”고 비판했다.

NYT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아니라 종전으로 이어질 평화협정 체결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2005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했다가 실패한 시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만일 협상이 잘 안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제재를 하려고 해도 한국과 중국이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영철을 환대한 것을 두고 “북핵 프로그램과 관련한 양보를 얻어내기도 전에 이미 북한에 또 다른 승리를 안겼다”고 보도했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도 “북한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CNN은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두고 “이란보다 약한 핵 합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가 북한에 핵보유국으로 가는 입장권(패스)을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