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건물 붕괴 오늘 합동 현장감식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 과거 붕괴 사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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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아파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공통점은 '인재'
평화롭던 일요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4층짜리 낡은 상가 건물이 대낮에 갑자기 무너져 내려 주민 1명이 부상당했다.
3일 낮 붕괴사고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4층짜리 상가 건물에 대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은 붕괴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합동 현장 감식에 나선다고 4일 밝혔다.
서울시는 용산구 노후건물 붕괴사고의 후속 조치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정비구역에 대한 정밀 안전검검을 실시하기로 했고 이에 앞서 용산구와 함께 이번 사고에 대한 원인 분석과 후속 조치에 전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붕괴된 용산 상가 건물은 1966년 지어진 4층 규모 건물로 1·2층은 음식점, 3·4층은 주거공간이었다. 2006년 지정된 도시환경정비구역 내 위치했다.
현장 감식으로 붕괴 원인이 밝혀질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과거에 일어났던 대형 붕괴사고를 모아봤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우리나라 건물 붕괴 사고가 처음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약 50여년 전이다. 1970년 4월 8일 새벽 6시 30분. 서울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뉴스가 전해졌다. 서울시가 마포구 창전동에 야심차게 추진했던 지상 5층, 15개동 규모의 와우아파트 한 동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이 아파트는 준공된 지 석달 밖에 되지 않아 부실공사 논란이 일었다. 인명피해는 아파트에서 잠을 자던 주민 33명이 사망했고 38명이 다쳤으며 붕괴되는 과정에서 경사 밑에 있던 판잣집을 덮치면서 사상자수가 더 늘었다.
당시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와우아파트는 서울시가 책정한 건축 비용의 절반도 안되는 비용으로 건설됐으며 건물 자재 상당수가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공사비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제5·6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가 붕괴해 무너진 사고를 말한다.
당시 사고지점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된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사고지점을 지나가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는 통과 도중 뒷바퀴가 붕괴 지점에 걸쳐 있다가 차체가 뒤집혀 추락한 후, 떨어진 상판에 박혀 찌그러지는 바람에 등교길의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 24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시민과 학생 등 총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사고 원인은 건설당시 다리 밑부분을 이루고 있던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연결부분도 심하게 녹이 슬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다리 위해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이음새도 결함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붕괴 전 성수대교 설계 하중은 DB-18(총중량 32.4t)이었지만 이를 초과하는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과해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던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으로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했지만 안전점검 조치를 소홀히 해서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지난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돼 1000여명 이상의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삼풍백화점은 불과 20초 만에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무너져 내렸고 백화점 안에 있던 1천 500여 명의 고객과 종업원은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과 수사당국 관계자들은 "멀쩡했던 건물이 너무 심각하게 붕괴해 북한 공작원의 테러인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붕괴원인은 무단증축과 주요 기둥 제거에 있었다. 물건을 더 많이 진열할 생각에 주요 기둥들을 제거했고 나머지 기둥도 굵기를 25%나 줄였기에 불법 증축으로 늘어난 하중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설계, 시공, 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인명피해는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낳은 셈이다. 재산 피해액은 약 2700여억원 규모로 알려졌으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해 당시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3일 낮 붕괴사고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4층짜리 상가 건물에 대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은 붕괴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합동 현장 감식에 나선다고 4일 밝혔다.
서울시는 용산구 노후건물 붕괴사고의 후속 조치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정비구역에 대한 정밀 안전검검을 실시하기로 했고 이에 앞서 용산구와 함께 이번 사고에 대한 원인 분석과 후속 조치에 전 행정력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붕괴된 용산 상가 건물은 1966년 지어진 4층 규모 건물로 1·2층은 음식점, 3·4층은 주거공간이었다. 2006년 지정된 도시환경정비구역 내 위치했다.
현장 감식으로 붕괴 원인이 밝혀질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과거에 일어났던 대형 붕괴사고를 모아봤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우리나라 건물 붕괴 사고가 처음으로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약 50여년 전이다. 1970년 4월 8일 새벽 6시 30분. 서울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리는 뉴스가 전해졌다. 서울시가 마포구 창전동에 야심차게 추진했던 지상 5층, 15개동 규모의 와우아파트 한 동이 무너졌다는 소식이었다.
이 아파트는 준공된 지 석달 밖에 되지 않아 부실공사 논란이 일었다. 인명피해는 아파트에서 잠을 자던 주민 33명이 사망했고 38명이 다쳤으며 붕괴되는 과정에서 경사 밑에 있던 판잣집을 덮치면서 사상자수가 더 늘었다.
당시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와우아파트는 서울시가 책정한 건축 비용의 절반도 안되는 비용으로 건설됐으며 건물 자재 상당수가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공사비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제5·6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가 붕괴해 무너진 사고를 말한다.
당시 사고지점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된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는 물속으로 빠졌다.
사고지점을 지나가던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는 통과 도중 뒷바퀴가 붕괴 지점에 걸쳐 있다가 차체가 뒤집혀 추락한 후, 떨어진 상판에 박혀 찌그러지는 바람에 등교길의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 24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시민과 학생 등 총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하면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사고 원인은 건설당시 다리 밑부분을 이루고 있던 트러스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연결부분도 심하게 녹이 슬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다리 위해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이음새도 결함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붕괴 전 성수대교 설계 하중은 DB-18(총중량 32.4t)이었지만 이를 초과하는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과해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던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또한 트러스식 공법은 이음새가 잘못되면 무너지기 쉬운 공법으로 이음새 핀 등의 세부 요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했지만 안전점검 조치를 소홀히 해서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지난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서울 서초동 소재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붕괴돼 1000여명 이상의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삼풍백화점은 불과 20초 만에 지상 5층부터 지하 4층까지 무너져 내렸고 백화점 안에 있던 1천 500여 명의 고객과 종업원은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과 수사당국 관계자들은 "멀쩡했던 건물이 너무 심각하게 붕괴해 북한 공작원의 테러인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붕괴원인은 무단증축과 주요 기둥 제거에 있었다. 물건을 더 많이 진열할 생각에 주요 기둥들을 제거했고 나머지 기둥도 굵기를 25%나 줄였기에 불법 증축으로 늘어난 하중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설계, 시공, 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인명피해는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낳은 셈이다. 재산 피해액은 약 2700여억원 규모로 알려졌으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해 당시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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