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오를 것(달러 강세)으로 예상해 ‘달러 재테크 상품’에 돈을 넣어둔 투자자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달러 가치는 지난 4월 중순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유로 등 주요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원화 대비로는 달러당 1090원 밑에 머물며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원·달러 환율의 하향 안정세(달러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단기 환차익을 노린 달러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달러 환율, 왜 하락하나

원·달러 환율은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70원70전에 마감했다. 지난 2월9일 기록한 연중 최고치(1092원10전)보다 21원40전(1.96%) 낮은 수치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로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두 달 가까이 상승을 거듭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횡보세를 지속하면서 두 지표 간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달러 인덱스와 원·달러 환율 간 상관계수는 약 0.7(최대값 1)에 달한다. 두 수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최근엔 그 강도가 다소 약해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 인덱스는 지난 4일 94.04로 2월15일 기록한 연 저점(88.59)보다 6.15% 올랐다. 천원창 신영증권 연구원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개월 연속 하락하는 등 유럽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자국 내 급격한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달러의 상대적 가치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반면 원화 대비 달러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이 2012년 3월 이후 지난 4월까지 6년2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이어가면서 국내에 대규모로 달러가 유입됐고,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완화되면서 원화 자산의 투자 매력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자는 1월 이후 6개월 연속 원화 채권을 순매수(누적 순매수액 26조5581억원)하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과 일부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원화 자산의 안전성이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연말까지 원화 강세 지속”

원·달러 환율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면서 연초부터 달아올랐던 달러 재테크 열기도 빠르게 식고 있다. 한국거래소의 달러선물지수(F-USDKRW)를 추종하는 ‘KOSEF 미국달러선물 레버리지(합성)’ 상장지수펀드(ETF)의 이달 하루 평균 거래량은 11만5447주로, 원·달러 환율이 1090원대까지 치솟았던 2월(59만4670주)보다 80% 넘게 급감했다. 대표적 달러 ETF인 이 상품은 달러 선물지수 하락률의 약 두 배만큼 손실을 보도록 설계돼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강할 때 많이 사고팔린다. 대신증권이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잔액은 작년 12월 말 1억2542만달러(약 1343억원)에서 지난달 말 9233만달러로 3000만달러가량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기존 원화 강세 요인에 더해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올 하반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50원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문정희 KB증권 연구원은 “Fed가 ‘점진적’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달러 약세를 유도하고 있어 지금 같은 글로벌 강달러 현상은 유지되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하 연구원은 “내년 하반기나 2020년 상반기는 돼야 국내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원화가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며 “달러는 안전자산인 만큼 투자 기간을 길게 본다면 지금 달러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