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큰손인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가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를 통해 SK플래닛이 운영하는 오픈마켓 11번가에 투자하는 건 국내 전자상거래(e커머스)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란 평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91조3000억원으로 2016년 64조9130억원에 비해 41% 늘어났다. 올해는 10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2016년 거래액이 2015년(53조8880억원)에 비해 20%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가팔라지는 추세다.

11번가는 이처럼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이베이코리아가 운영하는 G마켓과 1위 자리를 다투는 선두 업체다. 지난해 총거래액(GMV)은 9조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급성장하는 모바일 쇼핑에 투자를 집중해 지난해 모바일 순방문자 수(UV·1323만 명) 1위를 차지했다.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 수익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소프트뱅크(쿠팡), KKR(티켓몬스터) 등 해외 투자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소셜커머스 업체와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국민연금, 새마을금고를 비롯한 토종 자본이 11번가가 향후 e커머스 시장에서 차별화된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SK텔레콤이 보유한 첨단 기술과의 시너지 효과가 큰 데다 국내 1위 편의점 사업자 BGF리테일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과의 협업도 확대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H&Q코리아는 국민연금(3500억원)과 새마을금고(500억원)로부터 4000억원을 모집해 펀드를 만든다. 나머지 1000억원은 2013년 조성한 블라인드 펀드(투자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은 펀드)를 활용한다. 이 역시 국민연금이 주요 출자자로 참여한 펀드다.

투자는 11번가가 신규 발행하는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RCPS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상환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다. 11번가가 발행하는 RCPS는 SK텔레콤이 5~6년 후 상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환 시점에 회사의 공정가치를 평가해 상환하되 최소 연 3%의 수익률을 보장했다는 전언이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투자자 주도로 제3자에 회사를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청구권(드래그얼롱)도 포함됐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평가된 11번가의 기업 가치(2조5000억~3조원)는 GMV의 0.3배 수준으로 1.25배(GMV 4조원, 기업가치 5조원)의 평가를 받았던 쿠팡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수준”이라며 “콜옵션과 드래그얼롱 조항 등으로 손실 위험은 거의 없고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업사이드)은 커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