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몰래 자기 부모에게만 용돈?… 부부 싸움의 씨앗입니다
‘당신이 항상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누구인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안전기지’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애착을 느끼는 인물(안전기지)이 존재하면 비로소 마음을 놓고 지낸다. 영아부터 청소년기까지는 대개 부모가 안전기지 노릇을 한다. 그러다 결혼과 자녀 출산을 거치면서 안전기지가 바뀐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성인 31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40~60대는 안전기지로 배우자를 가장 많이 꼽았다. 남성은 40~60대 모두 70% 안팎이 배우자가 안전기지라고 답했다. 여성은 배우자라는 응답 비율이 40대 71.2%에서 50대 86%로 증가했다가 60대엔 49.1%로 줄었다. 그 대신 자녀를 안전기지로 꼽는 사람이 늘었다.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현재 삶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과 ‘앞으로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받고 싶은 사람’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배우자를 1순위로 응답한 사람이 각각 44.7%와 63.6%에 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나이가 많아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배우자에게 위로받고 있고, 위로받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지더라는 것이다. 40대와 50대 직장 남성을 대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연구에선 40대는 직무만족에 이어 부부관계인 데 비해 50대는 부부관계가 직무만족, 친구, 월소득 등 다른 어떤 요인보다 행복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
배우자 몰래 자기 부모에게만 용돈?… 부부 싸움의 씨앗입니다
이처럼 배우자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최우선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이다 보니 오히려 더 쉽게, 더 많이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실 부부는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정말 바쁘게 살아간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을 꾸려 나가야 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어른들을 모셔야 하고, 노후 준비도 해야 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나만 혼자 애쓰는 것 같아서 상대방에게 날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돈 문제까지 겹치면 부부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돈 문제로 부부가 갈등을 겪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갈등이 생겼다면 가급적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부부가 꿈꾸는 재무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돈 문제로 인한 부부 갈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하고 심화되며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돈과 관련된 부부 갈등의 발생 원인은 소득 감소, 재무적 부정직, 소비 습관의 차이 등이다. 소득이 줄면 부부가 갈등을 겪기 쉽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퇴직, 사업 실패 등으로 소득이 감소하면 부부 갈등이 빚어진다.

재무적 부정직도 부부 갈등의 원인이다. 남편이나 아내 중 한 사람이 재무관리를 맡은 경우 상대방에게 가계 재정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 배우자 몰래 자기 부모에게 용돈을 주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투자하는 등의 비밀도 갈등의 씨앗이다. 소비를 기분 전환 수단으로 여겨 충동 구매하거나, 대출받아 비싼 물건을 사고, 친구에게 쉽게 돈을 빌려주는 등 잘못된 소비 습관도 갈등을 부른다.

이런 이유로 생긴 갈등은 미래에 대한 불안, 재무적 압박감, 배우자의 무시와 비난 같은 감정적 문제가 더해져 심화된다. 특히 재무적 어려움이 상대방의 무지와 잘못 때문에 생겼다는 비난을 하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네 탓이야’라는 비난은 갈등을 넘어 부부 싸움의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다.

갈등 상황을 해결하려면 가계 재무 상태를 점검하고 재무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부부가 합리적인 자세로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먼저 두 사람 간 감정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배우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대화의 기술’이다. 대화의 기술은 우선 상대방과 대화가 이뤄지게 만들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면서도 상대방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갈등 해결 노력이 한 사람에 의해서만 이뤄지면 감정적 한계에 도달해 갈등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이 경우 결혼을 후회하거나 이혼을 고민하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 기초해 함께 노력할 때 갈등을 씻어내고 재무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돈 문제로 인한 부부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비결은 ‘서로에게 항상 진실을 말하고, 가계 재무 관리를 부부가 함께 고민하며, 문제가 생기더라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