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1000원짜리 물건 팔아 독립운동가 유물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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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보물마트 대표
인천 시장서 '1000냥 백화점' 히트
아이디어 상품으로 차별화 성공
"혼자보기 아까워 갤러리 열어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 알릴 터"
인천 시장서 '1000냥 백화점' 히트
아이디어 상품으로 차별화 성공
"혼자보기 아까워 갤러리 열어
조상들의 숭고한 정신 알릴 터"
![이종희 보물마트 및 우리갤러리 대표가 충남 예산에 있는 갤러리에서 도자기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예산=김낙훈 기자](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AA.16892882.1.jpg)
대개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돈 많은 사람이나 예술인의 전유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새로 문을 연 우리갤러리는 노점상 출신 유통인인 이종희 대표가 세운 곳이다. 지난 5월22일 부처님오신날에 개관한 이곳은 가야산과 덕숭산이 팔을 벌리고 있는 품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지대가 높아 계곡 사이로 멀리 내포신도시가 내려다보인다. 덕산은 이 대표의 고향인 해미와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개관일에는 기업인 등 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 갤러리는 몇 가지 면에서 특이하다. 축대가 다듬이돌 200여 개로 구성돼 있다. 중간에 있는 작은 폭포에선 우물을 파서 펌프로 길어올린 물이 흘러 내린다. 약 4300㎡ 규모의 대지 한복판에 가정집이 있고 양쪽에 두 채의 건물이 있다.
서쪽 건물은 전시관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유품이나 기록물, 과거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책자 기록물 등이 전시돼 있다. 주로 충청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나 이 지역 관련 유물들이다.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1000원짜리 물건 팔아 독립운동가 유물 수집](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AA.16897505.1.jpg)
지금 60대에 접어든 사람은 누구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을 듯하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다. 고향에서 10대 중반에 상경한 그는 버스회사에서 일했다. 작업복을 입고 차밑으로 기어 들어가 기름냄새를 맡으며 정비를 맡았다. 당시엔 버스 고장이 많아 정비가 중요한 직업이었다. 그 뒤 운전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20대 중반부터 액세서리 노점상을 시작했다. 영등포역앞과 역곡역 주안역 등 수도권 지하철 1호선역이 그의 주된 활동 무대였다. 파출소에 끌려가고 깡패에게 수난을 당해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난 극복’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집 장남인 그의 어깨에 온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었다. 결혼한 뒤엔 부부 노점상으로 변신했다.
장사의 기본에 눈을 뜬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일본에서 본 ‘100엔숍’을 벤치마킹해 세운 ‘1000냥 백화점’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종잣돈은 운좋게 당첨된 전화번호 ‘2424’번을 판 돈으로 마련했다. 하루아침에 점포를 얻을 순 없었다. 궁리 끝에 빈 점포를 며칠간 빌리기로 하고 찾던 중 인천 석남동 거북시장의 33㎡짜리 점포를 며칠간 얻기로 계약했다. 이른바 ‘깔세’다.
미리 시장을 훑어 1000원에 팔 수 있는 물건을 봐뒀다. 공구 문구 완구 세제 행주 잡화 등 680여 종을 모두 1000원 한 장에 판다는 내용을 신문 전단으로 뿌렸다. 1991년 4월10일 오전 9시. 이 대표 부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개점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아닌가. 오전 10시가 되자 봇물 터지듯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뒤 도매상을 거쳐 2003년 서울 시흥동 은행나무사거리 부근에 보물마트를 열었다. 대형마트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 다른 매장에선 구하기 힘든 물건들로 채우자고 다짐했다. 문구 완구 스포츠용품 생활용품 아이디어상품 등 5만여 점을 전시했다. 이 대표는 “탱크와 신선식품 빼고 다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며 “지금 갖춘 상품은 6만 종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 뒤 골동품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대학원에서 골동품과 유물에 대해 공부하면서 안목도 길렀다. 이 대표는 “평생 수집한 유물을 혼자만 보는 게 아까워 갤러리와 전시관을 열었다”며 “독립운동가들의 손때 묻은 기록과 물건을 통해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