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지속하기 힘든 이탈리아의 '포퓰리즘 불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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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프 요페 독일 '디 자이트' 편집위원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 어색한 조합
한쪽선 기본소득 올려주려 하고
다른 한쪽에선 감세 추진
ECB엔 막대한 부채 탕감 요구
이탈리아 유권자 72%가
유로존 잔류 희망하는데
두 정당은 유럽연합에 반대
EU의 강력한 지원 있겠지만
자구책 마련 나설지 주목한경 독점제휴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 어색한 조합
한쪽선 기본소득 올려주려 하고
다른 한쪽에선 감세 추진
ECB엔 막대한 부채 탕감 요구
이탈리아 유권자 72%가
유로존 잔류 희망하는데
두 정당은 유럽연합에 반대
EU의 강력한 지원 있겠지만
자구책 마련 나설지 주목한경 독점제휴
누구나 이탈리아를 사랑한다. 세련된 태도와 당당함 때문에 말이다. 로마가 서구문명의 요람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선도적 역할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이탈리아는 1922년 파시즘을 낳았다. 히틀러의 군대(storm troopers)가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하기 10년 전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는 친소련계 공산당 인사를 연정에 참여시킨 유일한 서방국가였다. 1970년에는 ‘붉은여단(이탈리아의 극좌 테러집단)’이 ‘유럽의 현대 테러리즘’을 창시했다.
이는 유쾌하지 못한 다른 ‘첫 번째 사례’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정당 ‘동맹’이 정권을 잡았다. 과거에도 유럽에서 급진 정당이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이탈리아처럼) 다수가 된 적은 없었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잊어라. (그는) 지지율이 3분의 1을 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결과는 역사적이다. 유럽의 운명이 로마에서 결정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민주당 내 좌파인) 버니 샌더스와 (강경 우파 성향의) 티파티가 연합했다고 생각해보라. 한편에선 정부 지출로 흥청망청하려 하고 다른 한편에선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그럴 수 없다고? 이탈리아에선 문제가 없다. 이탈리아에선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오성운동이 전 국민에게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려고 하는 반면 동맹은 (감세를 위해) 15% 단일세율을 추진하려 한다.
산수를 해보자.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가 넘는다. 유럽 헤지펀드 매니저 요셉 오굴리안은 이탈리아 새 정부가 원하는 것을 다하면 재정적자가 연간 1500억유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오성운동과 동맹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경제정책은 훨씬 더 치명적이다. 두 당 모두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길 원한다.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이탈리아에 이런 정책은 ‘독’이나 다름없다.
두 당은 모두 유로화와 유럽연합(EU)을 ‘제국주의’라고 부르며 반대한다. 그러면서 (유럽중앙은행인 ECB에) 이탈리아 부채 2500억유로를 탕감해달라고 요구한다. 두 당 모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없애자면서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모두 좋아하지 않는 정책이다.
시장은 두 당에 부정적이다. 10년 만기 독일 국채와 이탈리아 국채의 금리 차는 2013년 3%포인트에서 올해 4월 말 1%포인트 조금 넘는 수준으로 좁혀졌다. 하지만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을 둘러싼 혼란과 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으로) 이 금리 차는 지난주 2.6%포인트로 벌어졌다.
‘아름다운 이탈리아’는 이제 ‘추한 이탈리아’,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못난이로 변한 걸까. 이탈리아 친구들이 기운을 되찾을 수 있는 뉴스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연정은 오래 못갈 수 있다.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은 어색한 조합이다. 두 당은 서로 총리직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총선 후) 연정을 꾸리는 데 3개월 가까이 걸렸고 ‘약체 총리’를 내세웠다.
차라리 카인과 아벨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두 당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뜻).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주세페 콘테 총리 같은 ‘대리인’은 외교 업무를 오래 이끌지 못한다. 누군가는 냉소주의로 도피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73년간) 이탈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선 횟수만 66번이나 된다. 이번 정부도 정책을 펴나갈 만큼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 아마 오성운동과 동맹이 서로 끝장날 때까지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본다면 유권자들이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 두 당은 유로화를 싫어하지만 이탈리아 유권자의 72%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역) 잔류를 원한다.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유로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10년간 거의 제자리다. 이탈리아의 단위노동비용(상품 한 개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비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이 비용은 경쟁력의 핵심 척도다. ‘굿바이 이탈리아’라고 해야 맞지 않나.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을 다시 보자. 이탈리아의 무역적자는 GDP 대비 2.3%로 프랑스보다 사정이 낫다. 단위노동비용 증가는 수년간 이탈리아의 수출을 갉아먹었지만 2016년에는 증가율이 0.5%로 둔화됐다.
게다가 EU는 이탈리아가 침몰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EU의 ‘창립 멤버’이자 유럽 내 4대 경제대국이다. 흔히 말하듯 이탈리아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드라기는 2012년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유로존에 막대한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ECB는 이탈리아 국채를 떠받치고 있다. 유럽 은행에 무이자 대출을 하는 동시에 막대한 국채를 사들일 수 있는 폭넓은 수단을 갖고 있다. 유럽은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오성운동과 동맹의 ‘피리 부는 사람(선동꾼)’ 뒤에 줄지어 선 채로 자구책을 찾을 수 있을까.
원제=Italy’s Populist Flirtation Won’t Last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한경 독점제휴
이탈리아는 1922년 파시즘을 낳았다. 히틀러의 군대(storm troopers)가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하기 10년 전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는 친소련계 공산당 인사를 연정에 참여시킨 유일한 서방국가였다. 1970년에는 ‘붉은여단(이탈리아의 극좌 테러집단)’이 ‘유럽의 현대 테러리즘’을 창시했다.
이는 유쾌하지 못한 다른 ‘첫 번째 사례’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에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정당 ‘동맹’이 정권을 잡았다. 과거에도 유럽에서 급진 정당이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이탈리아처럼) 다수가 된 적은 없었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잊어라. (그는) 지지율이 3분의 1을 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결과는 역사적이다. 유럽의 운명이 로마에서 결정날 수도 있다.
미국에서 (민주당 내 좌파인) 버니 샌더스와 (강경 우파 성향의) 티파티가 연합했다고 생각해보라. 한편에선 정부 지출로 흥청망청하려 하고 다른 한편에선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그럴 수 없다고? 이탈리아에선 문제가 없다. 이탈리아에선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오성운동이 전 국민에게 월 78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려고 하는 반면 동맹은 (감세를 위해) 15% 단일세율을 추진하려 한다.
산수를 해보자. 이탈리아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가 넘는다. 유럽 헤지펀드 매니저 요셉 오굴리안은 이탈리아 새 정부가 원하는 것을 다하면 재정적자가 연간 1500억유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오성운동과 동맹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경제정책은 훨씬 더 치명적이다. 두 당 모두 연금 수령 연령을 낮추길 원한다.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유럽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이탈리아에 이런 정책은 ‘독’이나 다름없다.
두 당은 모두 유로화와 유럽연합(EU)을 ‘제국주의’라고 부르며 반대한다. 그러면서 (유럽중앙은행인 ECB에) 이탈리아 부채 2500억유로를 탕감해달라고 요구한다. 두 당 모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없애자면서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모두 좋아하지 않는 정책이다.
시장은 두 당에 부정적이다. 10년 만기 독일 국채와 이탈리아 국채의 금리 차는 2013년 3%포인트에서 올해 4월 말 1%포인트 조금 넘는 수준으로 좁혀졌다. 하지만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을 둘러싼 혼란과 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으로) 이 금리 차는 지난주 2.6%포인트로 벌어졌다.
‘아름다운 이탈리아’는 이제 ‘추한 이탈리아’,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못난이로 변한 걸까. 이탈리아 친구들이 기운을 되찾을 수 있는 뉴스도 몇 가지 있다.
첫째, 연정은 오래 못갈 수 있다.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은 어색한 조합이다. 두 당은 서로 총리직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총선 후) 연정을 꾸리는 데 3개월 가까이 걸렸고 ‘약체 총리’를 내세웠다.
차라리 카인과 아벨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두 당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뜻).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주세페 콘테 총리 같은 ‘대리인’은 외교 업무를 오래 이끌지 못한다. 누군가는 냉소주의로 도피할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73년간) 이탈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선 횟수만 66번이나 된다. 이번 정부도 정책을 펴나갈 만큼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 아마 오성운동과 동맹이 서로 끝장날 때까지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본다면 유권자들이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 두 당은 유로화를 싫어하지만 이탈리아 유권자의 72%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지역) 잔류를 원한다.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유로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은 10년간 거의 제자리다. 이탈리아의 단위노동비용(상품 한 개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비용)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자릿수로 증가했다. 이 비용은 경쟁력의 핵심 척도다. ‘굿바이 이탈리아’라고 해야 맞지 않나.
그래도 긍정적인 측면을 다시 보자. 이탈리아의 무역적자는 GDP 대비 2.3%로 프랑스보다 사정이 낫다. 단위노동비용 증가는 수년간 이탈리아의 수출을 갉아먹었지만 2016년에는 증가율이 0.5%로 둔화됐다.
게다가 EU는 이탈리아가 침몰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이탈리아는 EU의 ‘창립 멤버’이자 유럽 내 4대 경제대국이다. 흔히 말하듯 이탈리아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드라기는 2012년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고 유로존에 막대한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ECB는 이탈리아 국채를 떠받치고 있다. 유럽 은행에 무이자 대출을 하는 동시에 막대한 국채를 사들일 수 있는 폭넓은 수단을 갖고 있다. 유럽은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오성운동과 동맹의 ‘피리 부는 사람(선동꾼)’ 뒤에 줄지어 선 채로 자구책을 찾을 수 있을까.
원제=Italy’s Populist Flirtation Won’t Last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한경 독점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