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유와 민주주의 틈새… 포퓰리즘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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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민주주의
야스차 뭉크 지음 /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 464쪽 / 1만6000원
야스차 뭉크 지음 /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 464쪽 / 1만6000원
대형 부패 스캔들이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당을 뒤흔드는 가운데 2010년 헝가리 총선거가 치러졌다. 유권자들은 오르반 빅토르의 청년민주동맹에 압도적 과반수 의석을 줬다. 취임 후 오르반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국영TV와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를 장악했다. 선거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고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엄격한 규제를 시행했다. 처음에는 보수적 가치관을 지녔지만 진솔한 민주주의자임을 자처했던 그였다.
2015년 젊은 포퓰리스트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그리스 총리에 선출됐다. 그는 경제가 위축되고 청년실업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급증하자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이 결정한 긴축구제정책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들 기구가 있는 브뤼셀의 테크노크라트들은 강경했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긴축정책 중단을 결정했지만 더 큰 어려움을 요구하는 협상안을 제시한 테크노크라트들에게 굴복했다.
미국의 정치 분야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재단 수석연구원 야스차 뭉크는 헝가리와 그리스의 사례를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헝가리에서는 ‘국민의 뜻’, 즉 선거의 결과가 법치주의와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개별 기관들의 독립성을 억눌렀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가 위축된 것이다. 그리스에선 시장의 힘과 테크노크라트들의 신념이 국민의 뜻을 따돌렸다. 민주주의가 힘을 잃은 것이다.
《위험한 민주주의》는 뭉크가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위기 징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하는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는 확대되고 공고해졌다. 아니,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들은 이런 믿음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하다고 그는 진단한다.
미국에선 선거 불복을 공언하고, 주요 정적을 감옥에 가두라고 촉구하고, 무슬림과 멕시코인에 대한 거부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오스트리아에선 극우성향의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이길 뻔했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같이 안정되고 포용적인 국가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이 전례없이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한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오랜 믿음이 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란 다분히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지 필연적 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주요 민주주의 국가는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은 대부분 종교, 인종 등의 측면에서 동질적이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소수의 거대 언론매체에 의해 걸러졌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글로벌화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자본주의는 수시로 위기에 직면한다. 빈부격차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다. 현재보다 미래가 나을 것이라는 전망은 설 자리를 잃었다. 세계화의 결과로 뒤섞여 살게 된 이방인과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분노지수도 위험 수준이다.
그 결과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게 됐고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권력분립, 언론자유, 법치주의 등을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하는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 ‘반자유적 민주주의’다. 이렇게 등장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독재로 치닫기 십상이다. 또 하나는 그런 자유보장 제도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서 국민의 뜻이 무시당하고 민주주의가 소수의 과두제로 전락하는 ‘민주주의의 없는 권리 보장’, 즉 비민주적 자유주의다.
미국인 전체에서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는 1995년 24%에서 최근 32%로 늘어났다. 노골적으로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사람도 1995년에는 16명 중 1명이었으나 2011년에는 6명 중 1명꼴로 증가했다. 독일, 영국, 미국에서 스스로를 극좌 또는 극우로 여기는 청년층 비중은 지난 20년 동안 대략 2배로 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얄팍하고 깨지기 쉽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특히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 편 가르기, 과격한 선동이 여과 없이 펼쳐지는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포퓰리즘 득세에 크게 기여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민족주의의 재정립과 경제제도 개선, 시민의 신뢰회복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세제개혁, 주택공급 방식 개선, 생산성 향상, 복지제도 재구성 등을 통한 빈부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
저자는 또한 권위주의로 몰락할 위기를 믿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성공 사례로 한국의 촛불혁명을 든다. 하지만 책을 번역한 함규진 서울교대 교수는 “우린 과연 성공했느냐”고 반문한다. 정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혐오, 빈부격차, 일자리 감소, 소셜미디어의 부작용, 극단적 이분법 등을 개선할 자세라도 갖추고 있느냐는 자문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2015년 젊은 포퓰리스트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그리스 총리에 선출됐다. 그는 경제가 위축되고 청년실업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급증하자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이 결정한 긴축구제정책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들 기구가 있는 브뤼셀의 테크노크라트들은 강경했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긴축정책 중단을 결정했지만 더 큰 어려움을 요구하는 협상안을 제시한 테크노크라트들에게 굴복했다.
미국의 정치 분야 싱크탱크인 뉴아메리카재단 수석연구원 야스차 뭉크는 헝가리와 그리스의 사례를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헝가리에서는 ‘국민의 뜻’, 즉 선거의 결과가 법치주의와 소수집단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개별 기관들의 독립성을 억눌렀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자유주의가 위축된 것이다. 그리스에선 시장의 힘과 테크노크라트들의 신념이 국민의 뜻을 따돌렸다. 민주주의가 힘을 잃은 것이다.
《위험한 민주주의》는 뭉크가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위기 징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하는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는 확대되고 공고해졌다. 아니,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최근의 사례들은 이런 믿음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하다고 그는 진단한다.
미국에선 선거 불복을 공언하고, 주요 정적을 감옥에 가두라고 촉구하고, 무슬림과 멕시코인에 대한 거부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오스트리아에선 극우성향의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이길 뻔했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같이 안정되고 포용적인 국가에서도 극단주의자들이 전례없이 성공을 자축하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한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오랜 믿음이 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유민주주의란 다분히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지 필연적 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주요 민주주의 국가는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이들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은 대부분 종교, 인종 등의 측면에서 동질적이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소수의 거대 언론매체에 의해 걸러졌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글로벌화된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자본주의는 수시로 위기에 직면한다. 빈부격차는 세계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다. 현재보다 미래가 나을 것이라는 전망은 설 자리를 잃었다. 세계화의 결과로 뒤섞여 살게 된 이방인과 인종적,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분노지수도 위험 수준이다.
그 결과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게 됐고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권력분립, 언론자유, 법치주의 등을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무력화하는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 ‘반자유적 민주주의’다. 이렇게 등장한 권위주의적 지도자는 독재로 치닫기 십상이다. 또 하나는 그런 자유보장 제도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서 국민의 뜻이 무시당하고 민주주의가 소수의 과두제로 전락하는 ‘민주주의의 없는 권리 보장’, 즉 비민주적 자유주의다.
미국인 전체에서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는 1995년 24%에서 최근 32%로 늘어났다. 노골적으로 군사독재를 지지하는 사람도 1995년에는 16명 중 1명이었으나 2011년에는 6명 중 1명꼴로 증가했다. 독일, 영국, 미국에서 스스로를 극좌 또는 극우로 여기는 청년층 비중은 지난 20년 동안 대략 2배로 늘었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얄팍하고 깨지기 쉽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특히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 편 가르기, 과격한 선동이 여과 없이 펼쳐지는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포퓰리즘 득세에 크게 기여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민족주의의 재정립과 경제제도 개선, 시민의 신뢰회복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세제개혁, 주택공급 방식 개선, 생산성 향상, 복지제도 재구성 등을 통한 빈부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
저자는 또한 권위주의로 몰락할 위기를 믿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성공 사례로 한국의 촛불혁명을 든다. 하지만 책을 번역한 함규진 서울교대 교수는 “우린 과연 성공했느냐”고 반문한다. 정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혐오, 빈부격차, 일자리 감소, 소셜미디어의 부작용, 극단적 이분법 등을 개선할 자세라도 갖추고 있느냐는 자문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