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베끼기·판박이 공약' 난무… 멍드는 지자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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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풀뿌리 민주주의
(5·끝) 빨라지는 지자체 ‘소멸 시계’
인구 급감하는데…
노인 위한 선심성 공약만
청년층 잡을 정책은 실종
출산장려금 올리기 경쟁에
지자체 稅收 매년 줄어들어
"인구절벽 막을 정책인지
유권자들 꼼꼼히 따져야"
(5·끝) 빨라지는 지자체 ‘소멸 시계’
인구 급감하는데…
노인 위한 선심성 공약만
청년층 잡을 정책은 실종
출산장려금 올리기 경쟁에
지자체 稅收 매년 줄어들어
"인구절벽 막을 정책인지
유권자들 꼼꼼히 따져야"
“선거 때마다 매번 똑같은 정책이 쏟아집니다.”
전남지역의 한 군수 권한대행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비슷한 공약들이 지방자치단체 미래를 무너뜨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구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남지역의 여러 시·군이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해 매년 인구가 줄고 있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은 노인 복지를 위한 선심성 공약만 내걸고 있다. 유권자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정작 중요한 인구 늘리기 정책은 외면당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근시안 선거 공약
지난 7일 찾아간 보성군은 전남의 여느 군과는 선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 군수가 뇌물혐의로 구속된 터라 ‘무주공산’인 군수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3선 군의원 출신인 김철우 후보를 공천했고, 이에 맞서 재선 군수 출신인 하승완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서면서 맞대결 중이다.
이들이 제시한 공약은 차이가 없었다. 후보자들은 대부분 농어민 수당 20만원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김 후보는 노인건강조례 제정으로 표심을 잡으려 하고 있고, 하 후보는 ‘스마트 농업’이란 비전을 제시했다. 여기에 두 후보 모두 보성의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인구학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보성의 대표 관광 자원인 차밭이 ‘인구절벽’ 문제로 위기에 처했다”며 “차밭 운영자들이 대부분 고령인데 뒤를 이을 청년 세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 지적이 맞다면 보성의 군수 후보들은 ‘헛발질’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4만 명 규모의 보성군 인구는 2040년이면 30.3% 감소한 3만474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2060년께면 도시 자족 기능의 마지노선인 2만 명(1만9116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보성군을 포함한 전남 지역 전체로도 마찬가지다. 이미 2013년에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전라남도가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남 인구는 188만6000명에서 2040년이면 159만6000명으로 줄어든다. 인구 이동과 합계출산율(1.46명) 등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가정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두 지표 모두 악화일로다.
사정이 이런데도 선거에 나온 후보들 공약은 4년 전이나, 다른 농어촌 도(道)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영삼 민주평화당 전남지사 후보는 70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매월 7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김영록 민주당 후보는 공짜 공약은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전남관광공사 설립이나 농수축산생명산업벨트 조성 등 어디서 본 듯한 공약만 ‘재탕’했다.
◆어디나 똑같은 인구정책
전문가들은 인구절벽이란 ‘정해진 미래’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지자체가 천편일률적인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를 더 낳게 한다며 출산장려금을 퍼붓는 식이다. 전북 남원은 올초 출산장려금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첫째 200만원, 둘째 500만원, 셋째 이상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1년 전보다 4~5배 안팎 올린 것이다. 충남 논산, 충북 괴산, 경기 가평, 대구 달성 등도 올해부터 출산장려금을 최대 2000만원으로 늘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합계출산율 전국 1위인 전남 해남(2.43명) 인구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며 “퍼주기 정책은 지자체가 서로 벤치마킹하기 때문에 평균 지급액만 늘어날 뿐 인구 증가를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농어촌 지역은 도시에 비해 출산율은 훨씬 높지만 결혼해서 정착하는 청년 세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장려금과 아동 수당을 챙기고는 도시로 이사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인구가 줄어들면 지방재정교부세도 줄어든다. 지방재정교부세는 인구와 가구 수, 공무원 수, 노령인구 수 등에 따라 배분된다.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은 “인구 감소로 세수가 줄어들고, 거주자들에게 투입해야 할 예산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자체 미래 갉아먹는 선거문화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한 후보자를 선택하는 선거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후보자들 역시 선거 공약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인구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청년층 인구를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구체적으로 개별 시·군이 매년 10명 안팎의 남성과 여성을 더 낳거나 외부 도시에서 유입되기만 해도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실제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선심성’ 공약으로 유권자 표심을 사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광재 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시·도지사 공약 이행 비용은 무려 328조원이었지만 이 중 절반 정도만 예산이 확보됐다”며 “공약의 최초 설계부터 재정 계획을 따지고 정책 실효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보성=김우섭/박동휘 기자 duter@hankyung.com
전남지역의 한 군수 권한대행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비슷한 공약들이 지방자치단체 미래를 무너뜨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구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남지역의 여러 시·군이 신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해 매년 인구가 줄고 있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은 노인 복지를 위한 선심성 공약만 내걸고 있다. 유권자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정작 중요한 인구 늘리기 정책은 외면당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근시안 선거 공약
지난 7일 찾아간 보성군은 전남의 여느 군과는 선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 군수가 뇌물혐의로 구속된 터라 ‘무주공산’인 군수직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3선 군의원 출신인 김철우 후보를 공천했고, 이에 맞서 재선 군수 출신인 하승완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서면서 맞대결 중이다.
이들이 제시한 공약은 차이가 없었다. 후보자들은 대부분 농어민 수당 20만원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김 후보는 노인건강조례 제정으로 표심을 잡으려 하고 있고, 하 후보는 ‘스마트 농업’이란 비전을 제시했다. 여기에 두 후보 모두 보성의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인구학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보성의 대표 관광 자원인 차밭이 ‘인구절벽’ 문제로 위기에 처했다”며 “차밭 운영자들이 대부분 고령인데 뒤를 이을 청년 세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 지적이 맞다면 보성의 군수 후보들은 ‘헛발질’만 하고 있다는 얘기다. 4만 명 규모의 보성군 인구는 2040년이면 30.3% 감소한 3만474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2060년께면 도시 자족 기능의 마지노선인 2만 명(1만9116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보성군을 포함한 전남 지역 전체로도 마찬가지다. 이미 2013년에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전라남도가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남 인구는 188만6000명에서 2040년이면 159만6000명으로 줄어든다. 인구 이동과 합계출산율(1.46명) 등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란 가정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두 지표 모두 악화일로다.
사정이 이런데도 선거에 나온 후보들 공약은 4년 전이나, 다른 농어촌 도(道)와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영삼 민주평화당 전남지사 후보는 70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매월 70만원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김영록 민주당 후보는 공짜 공약은 제시하고 있지 않지만 전남관광공사 설립이나 농수축산생명산업벨트 조성 등 어디서 본 듯한 공약만 ‘재탕’했다.
◆어디나 똑같은 인구정책
전문가들은 인구절벽이란 ‘정해진 미래’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지자체가 천편일률적인 정책을 시행 중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를 더 낳게 한다며 출산장려금을 퍼붓는 식이다. 전북 남원은 올초 출산장려금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첫째 200만원, 둘째 500만원, 셋째 이상 1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1년 전보다 4~5배 안팎 올린 것이다. 충남 논산, 충북 괴산, 경기 가평, 대구 달성 등도 올해부터 출산장려금을 최대 2000만원으로 늘렸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합계출산율 전국 1위인 전남 해남(2.43명) 인구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며 “퍼주기 정책은 지자체가 서로 벤치마킹하기 때문에 평균 지급액만 늘어날 뿐 인구 증가를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농어촌 지역은 도시에 비해 출산율은 훨씬 높지만 결혼해서 정착하는 청년 세대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장려금과 아동 수당을 챙기고는 도시로 이사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인구가 줄어들면 지방재정교부세도 줄어든다. 지방재정교부세는 인구와 가구 수, 공무원 수, 노령인구 수 등에 따라 배분된다.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은 “인구 감소로 세수가 줄어들고, 거주자들에게 투입해야 할 예산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자체 미래 갉아먹는 선거문화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미래에 대해 깊이 고민한 후보자를 선택하는 선거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후보자들 역시 선거 공약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인구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청년층 인구를 어떻게 끌어들일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구체적으로 개별 시·군이 매년 10명 안팎의 남성과 여성을 더 낳거나 외부 도시에서 유입되기만 해도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실제 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선심성’ 공약으로 유권자 표심을 사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광재 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시·도지사 공약 이행 비용은 무려 328조원이었지만 이 중 절반 정도만 예산이 확보됐다”며 “공약의 최초 설계부터 재정 계획을 따지고 정책 실효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안·보성=김우섭/박동휘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