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사상 두 번째로 긴 107개월 동안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벅셔헤서웨이 회장과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경기 논쟁을 벌여 주목받고 있다. 10년 이상 이어진 경기 확장 사이클이 드문 만큼 경기가 언제 꺾일 것인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버핏 회장은 미 경기는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이런 추세가 몇 년간 계속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양적완화(QE)로 지금 성장세의 기반을 만든 버냉키 전 의장은 미 경제가 2020년 절벽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내놨다. ‘거물’ 사이에도 미 경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셈이다.


◆버핏 “6회에 강타자 들어선 셈”

버핏 회장은 7일(현지시간)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확장세는 드문 형태이며 앞으로 몇 년 이상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시작된 미국의 경기 확장은 지난달까지 107개월째 이어져 사상 두 번째로 긴 기록을 세웠다. 성장세가 내년 7월까지 계속되면 역대 최장 기록(1991~2001년 120개월)을 넘어선다.

버핏 회장은 “미국 경제는 정말 강하게 느껴진다”며 “지금이 6회라고 치면 강타자들이 줄줄이 타석에 들어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를 야구에 비유한 것으로, 경기 사이클은 조금씩 후반기로 가고 있지만 아직 더 좋아질 기회가 있다는 의미다.

그는 다만 강한 경제가 반드시 주식을 매수할 시기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버핏 회장은 “주식에 대한 결정은 현재의 사업 전망과 무관해야 한다”며 “앞으로 6개월이나 1년 뒤 무엇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해 그를 근거로 주식을 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함께 인터뷰에 나선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최고경영자(CEO)도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다이먼 CEO는 “현재 경제를 보면 위험이 될 만한 것은 없다”며 “기업인의 자신감과 소비자 심리가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기지표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날 발표된 지난주 실업보험 청구자 수는 22만2000명으로 1967년 이래 최장인 170주 연속 30만 명을 밑돌고 있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지난달 58.3%까지 치솟았으며 2분기 경제 성장률은 다시 3% 중반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버냉키 “2년 뒤 절벽에서 떨어질 것”

버냉키 전 의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기업연구소(AEI) 주최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 부양으로 올해와 내년엔 호황을 보이겠지만 2020년에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 3000억달러 규모의 재정 확대에 대해 “미국 경제는 이미 완전고용 상태에 있다”며 “매우 잘못된 시점에서 이뤄지는 경기 부양책”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5월 실업률은 18년 만에 최저인 3.8%로 떨어졌다.

버냉키 전 의장은 “경기 부양책이 올해와 내년에는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2020년에는 ‘와일 E 코요테’처럼 절벽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와일 E 코요테는 미국 애니메이션 ‘루니 툰’에 나오는 캐릭터로, 달리는 새인 ‘로드 러너’를 잡으려고 무작정 달리다 절벽에서 추락하는 등 수모를 당한다. 완전고용 상황에서 부양책을 펼치는 트럼프 행정부를 분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코요테에 비유한 것이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올해와 내년에 경제성장률을 각각 3.3%와 2.9%로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2020년에는 1.8%로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이컵 루 전 재무장관도 이날 버냉키 전 의장과 비슷한 우려를 드러냈다. 루 전 장관은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경기 회복기에 대대적 경기 부양을 하는 건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높은 금리와 향후 경기 둔화 때 대처할 수단 부족, 재정적자 증가 등이 남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현재 재정 부양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며 “불이 다 타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라고 덧붙였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