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오는 12일 미·북 정상회담에서 1~2개월 내 핵사찰을 받는 방안에 합의하면 9년 만에 북한 핵사찰이 재개된다. 다만 그동안 북한이 핵사찰 대상 등을 놓고 대립하다 사찰을 중단시킨 전력이 있는 만큼 앞으로 핵사찰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한 뒤 전면 거부로 돌아선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은 1989년 프랑스 위성에 영변 핵시설이 찍힌 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북한이 보고한 것보다 많은 양의 플루토늄이 재처리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사찰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북한은 끝내 의심스러운 핵시설에 전면적인 특별사찰을 해야 한다는 IAEA 요구를 거부했다.

2차 북핵 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북한은 같은해 12월 핵동결 해제를 선언했고 이듬해 1월 비확산체제(NPT)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6자 회담과 2005년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은 NPT와 IAEA에 복귀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2008년에 다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미국과 핵 신고서 및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로 갈등을 벌이다 2009년 IAEA 핵사찰단을 추방했다.

이번에도 북한의 몽니가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지난달 16일 국회 강연에서 “북한 핵사찰이 시작되면 미국이나 IAEA는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자의적으로 사찰하는 것을 요구하겠지만 북한은 거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핵사찰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려면 북한이 보유한 핵을 모두 자진 신고하고 관련 핵시설에 대한 전면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는 20여 개에서 40여 개로 추정되고 있다. 영변 핵시설 외에 다른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는 영변 핵시설 외에 강성 발전소에서도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고 두 시설을 모두 가동할 경우 북한의 핵무기는 26~44개인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이 사찰단을 수용하면 미국이 제공할 반대급부로 종전선언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북한은 합의문에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비핵화를 명기하고 미국의 대북 불가침 공약, 평화협정 체결, 미·북 수교 등을 열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 명시하는 한편 달성 시기를 2020년 등으로 못 박길 희망하고 있지만 북한이 그에 난색을 보여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핵탄두와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수개월 안에 해외로 반출하자는 미국의 요구는 두 정상의 최종 결단에 달릴 공산이 커 보인다”고 전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