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모회사인 한국전력을 대신해 원자력발전소 수출을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수원이 가진 독자적인 수출 역량과 프로젝트 파이낸싱 능력을 앞세워 ‘한국형 원전’ 수출 전선의 맨 앞에서 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공사처럼 세계적인 운영회사를 설립해 한국 원전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원전 설계에서부터 건설 시공 운영에 이르기까지 노하우와 전문 인력, 부품 공급망을 확보한 원전 강국이다. 지난 3월 말 준공한 중동 최초 원전인 UAE 바라카 1호기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최첨단 원전 기술이 녹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준공식에서 “바라카 원전은 신의 축복”이라고 극찬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원전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해외 수주 활동을 적극 전개하겠다”고 했다. 한국형 원전 수출이 원활히 이뤄진다면 원전시장 선점은 물론 수만 개의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원전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정부의 탈(脫)원전 드라이브 탓이다. 정부는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원전 설계 수명 연장 불허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공사가 끝난 신고리 원전 4호기는 안전성이 검증된 모델이지만 ‘안전성 추가 검증’을 이유로 수개월째 가동을 못하고 있다. 기회 손실액만 하루 20억원에 달한다. 해외에선 원전을 극찬하는 정부가 국내에선 원전산업 뿌리를 뒤흔드는 탈원전을 고수하며 원전 수출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춤하던 세계 원전시장은 인도 등을 중심으로 다시 급성장하고 있다. 경쟁국들이 자국 업체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에서 한국 원전이 수출 전선에서 우위를 지켜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원전 기술과 인력 인프라도 붕괴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탈원전을 하면서 다른 나라에는 원전을 사달라는 모순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