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랩은 기존 사업인 차량공유에 이어 음식 배달, 결제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그랩 제공
그랩은 기존 사업인 차량공유에 이어 음식 배달, 결제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그랩 제공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주)는 지난 4월 ‘동남아시아의 우버’로 불리는 차량공유 업체 그랩에 810억원을 투자해 전환상환우선주 1.34%를 취득했다. 그랩이 20억달러(약 2조154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일본 소프트뱅크, 중국 차량공유 업체 디디추싱 등과 함께 참여한 것이다.

이번 투자는 장동현 SK(주) 사장이 바이오·제약, 에너지, 반도체 소재, 정보통신기술(ICT)에 이어 ‘모빌리티(이동성)’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던진 ‘다섯 번째 승부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SK(주)는 2015년 국내 1위 차량공유 기업 쏘카에 투자한 데 이어 지난해 미국 개인 간 차량공유 회사 투로의 지분을 취득했다. 그랩과 협력해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에서 차량공유 사업의 노하우를 쌓고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목표다.

사회문제 해결하며 기업 가치도 올려

그랩과 손 잡은 SK, 글로벌 차량공유 시장 공략
지난 8일 싱가포르 중심부에 있는 그랩 드라이버센터의 25개 창구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이곳은 새로 그랩 운전기사가 되려는 사람이나 기존 그랩 운전기사의 민원을 해결하는 사무소다. 센터에서 만난 그랩 운전기사 지미 간(62)은 “그랩은 운전기사를 돕는 데 신경 쓰고 규칙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다른 택시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말했다.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창업해 싱가포르로 둥지를 옮긴 그랩은 기업가치 60억달러를 돌파하며 동남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스타트업(신생 스타트업)이 됐다. 동남아 스타트업 최초로 올해 매출 10억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특히 그랩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조화’에 부합하는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SK(주)가 그랩에 투자한 것도 성장성뿐 아니라 낙후된 교통환경 개선, 운전기사 복지까지 고려한 그랩의 경영철학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한 강연에서 앤서니 탄 그랩 최고경영자(CEO)와 만난 일화를 들며 “탄 CEO는 동남아 사람들의 가장 큰 사회적 고통이 뭔지를 생각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며 “소비자의 고통이 무엇인지 살펴 혁신적인 생각과 방법론을 도입하는 게 경영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랩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차를 먼저 호출하는 ‘저스트그랩’ 서비스를 도입했다. 그랩과 함께 일하는 택시기사는 미터 요금보다 조금 덜 받지만 바로 손님을 태울 수 있고, 승객은 더 빠르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SK(주)는 승객과 운전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그랩의 사업구조에 주목했다. 그랩은 기존 교통 수단의 사업 영역을 잠식하는 대신 대중교통 연계를 성장 전략으로 잡았다. 그 덕분에 싱가포르 정부도 그랩을 수요기반형 서비스로 인정해 저스트그랩 같은 실험을 허용했다.

SK와 그랩 시너지 효과 기대

그랩은 필리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8개국 217개 도시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SK C&C의 빅데이터 기술, SK텔레콤의 고정밀 지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각 계열사가 그랩과 협업할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SK(주)의 설명이다. SK(주)는 그랩 이사회에 옵서버로 참여할 만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본사에서 만난 탄후이링 그랩 공동창업자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그랩은 빅데이터와 자율주행차용 정밀 지도 등 SK가 보유한 기술을 토대로 상호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차량공유를 비롯한 모빌리티 사업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SK(주) 관계자는 “차량공유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교통·환경문제 개선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사장은 “바이오제약, 글로벌 에너지, 반도체 소재, ICT 서비스를 비롯해 모빌리티 등 신성장동력에 투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투자전문 지주회사로서 글로벌 사업 확장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