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가 이달 들어 잇달아 선박 수주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선박 가격(신조선가)이 오르고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노후 선박 해체량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추가 수주 전망도 밝은 편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의 주요 먹거리인 원유 생산·시추 설비인 해양플랜트 수주는 여전히 부진하다. 성동조선해양 등 중형 조선사들도 수년째 구조조정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 조선업 전반의 회복세를 거론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업계, 선박수주 늘었지만 해양플랜트는 '겨울'
선가 오르고, 발주 늘고

12일 영국의 조선·해운 전문 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한국 조선사는 410만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감안한 표준화물선 환산 톤수)의 선박을 수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44만CGT)보다 68% 늘었다. 전 세계 발주량(1007만CGT)의 40%를 따내면서 중국(359만CGT)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신조선가가 오르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해운사 등 발주처는 선박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있어야 발주에 나선다. 지금 주문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 빅3 중 한 곳은 지난주 초대형 유조선(VLCC)을 척당 9200만달러에 수주했다. 두 달 전 이 회사의 같은 선종(船種) 수주액(8500만달러)보다 8%가량 상승한 것이다. 클락슨 집계 결과 작년 말 척당 8150만달러까지 떨어졌던 VLCC 신조선가는 지난달 7.3% 오른 8750만달러를 기록했다. 상승 사이클로 진입한 신조선가는 그동안 대략 6년간 오름세를 유지해왔다. 선박 가격 상승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선박 노후화에 따른 폐선 교체 수요가 증가한 것도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전 세계 유조선 등 탱커 선박 해체량은 73척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선박의 황산화물 배출량을 기존 3.5%에서 0.5%로 낮추도록 하면서 이 기준을 맞출 수 없는 노후 선박을 중심으로 폐선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회복 판단 아직 일러

온기가 흐르는 선박 시장과 달리 해양플랜트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1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따낸 나스르 프로젝트 이후 4년째 신규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이 전무하다. 당장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설계기간만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나스르 프로젝트 인도가 끝나는 다음달 말부터 2600명에 달하는 해양사업본부 임직원 전체가 유휴 인력이 될 전망이다. 조선 빅3 가운데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이 가장 많은 삼성중공업도 지난해 6월 ‘코랄 FLNG(부유식 LNG 생산설비)’ 이후 수주가 없다.

2016년 수주가 워낙 부진했던 탓에 현대중공업은 11개 도크(선박 건조·수리 시설) 중 3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해까지 2700여 명을 구조조정한 삼성중공업도 연말까지 희망퇴직 등을 통해 인력 감축에 나설 계획이다.

중형 조선사들의 경영 여건은 더 나쁘다. 국내 9개 중형 조선사(한진·STX·성동·대한·SPP·대선·한국야나세·연수·마스텍)의 올해 1분기 시장 점유율은 3.2%(1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같은 기간 건조량(인도량)도 10척으로 전년보다 75.8% 급감해 일감 부족이 심해지고 있다.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 텃밭이던 벌크선 시장에서도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에 밀린 지 오래다. 지난달엔 국내 해운사들마저 건조 가격이 10% 이상 저렴한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해 중형 조선업계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