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 생명보험사 교보생명이 자회사인 교보증권 경영권 매각 카드를 꺼내들었다. 2021년 새 보험업 회계처리기준(IFRS17) 시행을 앞두고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기업공개(IPO)를 요구하고 있는 재무적 투자자(FI)들을 달래기 위한 ‘시간끌기용’ 이벤트로 업계는 보고 있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최근 우리은행과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을 상대로 교보증권 경영권을 인수할 의향이 있는지 사전 수요 조사에 나섰다. 교보증권은 이날 공시를 통해 “대주주인 교보생명은 지분의 지속 보유, 합작회사 추진 또는 지분 매각 등 교보증권의 발전 방안으로 고려 가능한 사항 전반에 대해 통상적인 수준에서 검토 중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교보증권 지분 51.63%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소액주주들이다.
교보생명이 ‘교보증권 매각 가능성’을 시장에 흘렸지만 실제로 매각이 성사될 확률은 높지 않다는 게 IB업계 평가다. 교보생명 IPO를 요구하고 있는 FI들의 관심을 분산하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어피너티, IMM PE,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 등)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54억원에 사들이면서 2015년 말까지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일정한 가격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FI들은 2016년 중반부터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회사 평판 등을 고려해 행사를 미루고 IPO에 나서줄 것을 설득해왔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IPO를 차일피일 미뤄왔다. 금리 향방과 규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업계에서는 신 회장의 낮은 지분율이 IPO를 꺼리는 진짜 이유라고 보고 있다. 지난 1분기 기준 신 회장의 교보생명 지분율은 33.78%다.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36.91%에 불과하다. IPO로 지분율이 희석되면 경영권을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신 회장 측이 우려한다는 얘기다.
FI들은 지난 4월 신 회장과 교보생명에 “앞으로 2개월 안에 IPO를 포함한 투자 회수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속했던 2개월이 끝나가자 교보증권 매각 카드를 흘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FI들은 그러나 ‘시간끌기용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교보증권의 시가총액은 약 4000억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교보생명이 보유한 51.63%의 매각 대금은 25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특별 배당을 한다고 해도 각 FI에 돌아가는 몫은 의미 없는 수준이다.
IB업계 관계자는 “FI들은 투자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 IPO를 기다릴 수는 없다”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풋옵션을 행사하면 신 회장이 돈을 갚기 위해 교보생명 지분을 팔아 경영권을 잃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신 회장의 딜레마 때문에 교보생명이 갈팡질팡하면서 IB업계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