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만남 終戰까지" vs "튀는 두 정상이라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에 서명하는 TV 장면에 많은 시민이 환호했다. 양국이 합의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하지만 과시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의 트럼프 대통령과 반인권적인 공포정치를 일삼은 김정은을 쉽게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지는 모습도 보였다.

◆일손 놓고 지켜본 ‘세기의 만남’

시민들은 저마다 직장과 가정에서 일손을 멈추고 TV 앞에 모여 세기의 만남을 지켜봤다. 인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조영숙 씨(63)는 가게에서 TV 생중계를 보다 눈물을 살짝 훔쳤다. 조씨는 “뒷배경에 인공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장면이 인상깊었다”며 “서로 국가 취급도 안 하다 상호 인정하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정훈 씨(28)는 “두 사람이 악수하고 엄지를 치켜올리는 모습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마치 합성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남·북·미 종전 선언이 머지않았다는 기대도 나왔다. 교사 최민정 씨(32)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를 위한 첫걸음”이라며 “남·북·미 3국이 만나 종전 선언까지 나온다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자동차업계에서 일하는 김유민 씨(27)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안보 문제를 이유로 자동차 관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이번 회담이 잘 풀려서 자동차 수입이 미국 안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 정부 주장에 힘이 실릴 것 같다”고 예상했다. 화장품업계에 종사하는 정단비 씨(27)도 “남북한 간 협상이 잘 진전돼 개성공단도 재가동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직 해피엔딩은 멀었다” 신중론도

“해피엔딩은 멀었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이상훈 씨(56)는 “국가 간 합의라는 게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앞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수도 있을 텐데 국민도 기대를 좀 낮춰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직장인 김윤영 씨(33)는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잘 풀어가려면 미국 의회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북한 경제제재 완화 등에 과연 동의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의 본질이 달라졌다는 증거를 아직 찾아볼 수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대학생 허명우 씨(21)는 “트럼프도 김정은도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 양국이 합의를 지킬 것이란 신뢰가 들지 않는다”며 “특히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정말 핵을 폐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이 끝나고 미국 측이 우리 정부에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주부 김정희 씨(58)는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비용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빼고 한국에 미루려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며 “막대한 통일 비용이 젊은 세대에 무거운 짐을 지우게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주한미군 축소나 철수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국가 안보를 염려하는 시민도 많았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