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은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정상회담을 열고 합의안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이날 합의문이 선언적 비핵화에 그치면서 많은 아쉬움을 샀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긴장된 첫 악수 이후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모습을 보이면서 앞으로 양국 관계가 건설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남겼다. 두 정상의 모습은 전 세계에 방송으로 중계됐다.

두 정상이 숙소를 나서 합의안에 서명하기까지는 5시간30여 분이 걸렸다.

이날 오전 9시께(한국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불과 570m 떨어진 각자의 숙소인 샹그릴라호텔과 세인트리지스호텔을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출발했고 10여 분 뒤 김 위원장도 회담장인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로 향했다.

회담장에는 김정은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9시53분께 김정은의 전용 차량이 나타났다. 잠시 뒤 트럼프 대통령도 굳은 표정으로 반대쪽 입구에서 전용차량 캐딜락원을 타고 등장했다. 두 정상이 처음 대면한 로비에는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악력싸움 없이 김정은과 12초 간 악수를 했다.



김정은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올려다보지는 않았다. 회담장 로비에는 성조기(6개)와 인공기(6개)가 교차 배치돼 있었고, 바닥엔 레드 카펫이 깔렸다. CNN은 이 같은 모습을 ‘동등한 관계로 만났다’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어깨를 감싸고 팔을 두드리기도 했다. 김정은도 포토타임 후 트럼프 대통령의 팔에 손을 올렸다. 로이터통신은 행동분석 전문가를 인용해 “김 위원장보다 두 배 이상 나이가 많은 트럼프 대통령이 예의를 지키면서도 회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고, 김 위원장은 지지 않겠다는 의중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바닥을 이따금 바라보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곧바로 이어진 단독회담은 35분가량 이어졌다. 예정된 회담시간보다는 10여 분 짧았다.

단독회담을 마친 두 정상은 2층 5개 통로를 따라 확대정상회담장으로 이동했다. 발코니 앞에서 얘기하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약 100분 간 이어진 확대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함께 협력해 반드시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평소 모습을 되찾았다.

한 시간가량의 오찬 이후 두 정상은 통역 없이 1분 정도 호텔 주변을 걸어가며 대화했다. 도중에 기자들을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합의문 서명식을 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자신의 전용차 내부를 구경시켜주는 등 격의 없는 모습을 보였다. 타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김정은은 웃으며 마다했다.

두 정상을 포함한 양국 관계자들은 각자 헤어져 한 시간가량 논의한 뒤 오후 2시40분께 서명식 장소에 나타났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식에서 발언하는 동안 웃음 띤 얼굴로 앉아 있었다.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었지만 김정은이 질문이 오가는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처음 만난 로비로 함께 이동해 교환한 합의문을 각자 손에 들고 기념촬영을 한 뒤 마지막 악수를 나눴다.

싱가포르=김채연/이현일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