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북 정상회담 취재 열기 >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싱가포르 F1 경기장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각국 취재진이 TV로 생중계되는 정상회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미·북 정상회담 취재 열기 >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싱가포르 F1 경기장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각국 취재진이 TV로 생중계되는 정상회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주요 외신들은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세기의 장면, 역사적 장면으로 꼽으며 두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하지만 합의문에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자 ‘맥 빠지고 모호한 협상이 됐다’(CNN)는 비판을 쏟아냈다.

CNN은 미 정부가 목표로 정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고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 내용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과학자연맹(FAS) 군사분석가인 애덤 마운트 선임연구원은 CNN에 “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과거에 한 약속과 비교하면 이번 약속이 현저하게 약하다”며 “솔직히 이것보다는 강한 것을 기대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전직 관료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공허하게 반복하는 데 대한 대가로 안전 보장을 맞바꾸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미·북이 공동 성명에서 변화를 약속했지만 세부 사항은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어떻게 이 목표를 달성할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의 앤서니 루지에로 선임연구원은 로이터통신에 “추가 협상이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며 “(이번 협상 결과가) 10년 전 우리가 했던 협상의 재판으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고 평가 절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역사적 회담을 하는 데 성공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취할 조치들과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확인할 구체적인 방법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WP는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회담보다 훨씬 불확실한 상황에서 열렸다”며 “이번 회담은 생산적인 회담의 시작이 돼야 한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두 정상의 합의문은 디테일이 부족하다며 어떠한 구체적인 새 약속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톱 뉴스로 미·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다. NHK는 싱가포르 회담 현장을 생중계로 방송했으며 스튜디오에 한반도 전문가들을 불러 회담 의미와 전망을 다뤘다. 일본 언론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것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 주요 매체들 역시 회담 전 과정을 생중계와 속보로 전했다. 관영 CCTV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싱가포르 현장을 연결해 회담을 생중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머문 숙소를 지도와 함께 보여주며 상세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CCTV는 양국 정상이 회담장인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악수하자 긍정적인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단독·확대 정상회담과 업무 오찬, 두 정상의 산책, 합의문 서명식까지 상세하게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의 경제 개방이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개방이 북한의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WSJ는 ‘김정은에게 경제 개방은 양날의 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과 한국이 대(對)북한 투자에 박차를 가할 채비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북한에 혜택이자 위험 요인이 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북한과의 경제 협력을 시도하는 중국과 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다르다”며 “최근 남·북·미 대화 과정에서 좁아진 입지를 우려하는 중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자신들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말과 지난달 초 김정은을 만났을 때 북한의 경제 부흥 계획을 돕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WSJ는 “한국에선 경제 협력이 결국 통일 여건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 속에 문재인 정부가 여러 경협을 구상 중”이라며 “이는 국제사회 제재로 외화 유입이 끊긴 북한에도 매력적인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몇 주간 “제국주의의 심리모략전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거나 “외세 의존은 망국의 길”이라고 잇따라 주장하며 자본주의와 외부 영향력 확대에 강한 경계를 드러낸 것은 개방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경제매체 CNBC도 ‘김정은이 어떻게 경제를 발전시키고 정권을 보장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장의 관심은 이미 북한의 경제 제재 해제에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문가들 진단을 인용해 김정은이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범위에서 경제 발전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이 통제된 환경에서 경제 실험을 할 수 있는 협력과 노후 인프라를 개선할 수 있는 자본 유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관광 확대 등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그러나 제재가 철회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투자 환경은 까다롭고 불안한 수준이며 미국 기업들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낙관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