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악성흑색종이 뇌로 번져 투병하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다국적 제약사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사용해 4개월 만에 암이 완치됐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항암제의 등장에 세계가 들썩였다. 세계 2위 제약기업 MSD에는 이 약이 변곡점이 됐다. 키트루다는 MSD가 출시한 첫 번째 항암제다. 한 해 매출의 25% 이상인 11조원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붓는 MSD는 키트루다 출시 후 R&D 투자액의 절반을 항암제에 투입했다. 키트루다라는 혁신 신약은 MSD에 개방형 혁신 바람을 불어넣었다. 약효를 극대화하기 위해 손잡고 연구하는 기업만 60곳이 넘는다. 제넥신, 파멥신 등 한국 바이오 기업과의 치료법 개발 연구도 활발하다.

◆“한국 내 임상 확대할 것”

개방형 혁신이 이끈 MSD '키트루다'의 진화
지난달 말 로이 베인즈 MSD 임상연구센터 개발담당 수석부사장(사진)이 한국을 찾았다. 이 회사의 최고의학책임자(CMO)가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인즈 부사장은 국내 의료기관의 임상 환경 등을 둘러보고 한국 내 임상 연구를 확대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MSD는 키트루다 병용 요법과 관련해 60여 개 회사와 400개 넘는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며 “한국에서의 신약 개발 및 임상연구 활동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MSD는 지난해 한국에서 78건의 임상 연구를 했다. MSD가 진출한 나라 중 일곱 번째다.

MSD의 임상 연구를 이끌고 있는 키트루다는 인체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면역항암제다. 1세대 화학항암제, 2세대 표적항암제에 이어 3세대 항암제로 불린다. 시장분석업체 이벨류에이트파마는 올해 키트루다 매출이 6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700여 개 임상 통해 약 효능 극대화

MSD는 키트루다를 활용한 임상 프로그램만 70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약이 지닌 가능성 때문이다. 경쟁 제약·바이오회사와도 손을 잡았다. 일라이릴리, 화이자, 에자이 등이다. 이들이 개발한 화학항암제,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암백신 등과 키트루다를 함께 썼을 때 치료 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연구하고 있다. 효과가 높아진다면 키트루다의 사용 범위도 확대될 수 있다.

한국 바이오기업과도 협력하고 있다. 지난 2월 MSD는 파멥신의 항체치료제 타니비루맵과 키트루다의 병용 요법을 연구하는 협약을 맺었다. 호주에서 임상시험을 할 계획이다. 제넥신의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치료백신과 키트루다를 함께 쓰는 치료법 개발 연구도 하고 있다.
개방형 혁신이 이끈 MSD '키트루다'의 진화
◆개방형 혁신으로 시장 확대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3조원 넘는 비용을 10년 넘게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임상1상에 진입한 신약 후보물질 중 허가받는 약은 12%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점차 줄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2005년 이전 매년 36개의 신약이 허가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22개로 줄었다. 이 같은 환경 변화에 MSD는 기존 신약 키트루다의 가치와 효과를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2014년 키트루다 출시 이전까지 MSD는 백신이나 만성질환 치료제를 주로 개발했다. 2009년 셰링프라우를 인수하면서 키트루다도 MSD의 품으로 넘어왔다. 이 약을 통해 단숨에 면역항암제 시장 리더로 도약했다. 베인즈 부사장은 “신약 개발은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현실적이어야 한다”며 “소규모 제약회사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외부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