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강자’ 독일의 기업 본사 분포를 보면 흥미롭다. 벤츠와 포르쉐의 본사는 슈투트가르트에 있다. BMW는 뮌헨이다. 알리안츠도 본사가 뮌헨에 있지만 1890년 창업은 베를린에서 했다. 아디다스는 뉘른베르크 교외 헤르초게나우라흐라는 소읍에, 코메르츠방크는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두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쾰른, 몽블랑은 함부르크에 있다. 니베아크림으로 유명한 바이어스도르프도 이 항구 도시가 만들어낸 기업이다. 화학공룡 바스프는 153년 전 설립 이후 줄곧 만하임을 지키고 있다.

[천자 칼럼] 국가간 경쟁, 지역간 경쟁
대부분 유럽 국가들의 역사가 ‘자유도시들 간의 경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집권적 문화가 강하다는 프랑스에도 지역별 특성이나 산업 차가 뚜렷하다.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역 간 경쟁, 도시 간 다툼이 더 치열한 경우가 많다.

개방이 ‘메가트렌드’가 되면서 지역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도쿄와 오사카의 상업·산업 경쟁 속에 다른 도시들이 틈새 공략에 나서는 모습이다. 일본인들이 농반진반으로 지칭하는 ‘도요타국(國) 나고야시(市)’가 대표적이다. 나고야에는 린나이, 부라더(미싱)처럼 다른 쟁쟁한 기업도 많다.

한국은 중앙집중 전통이 유달리 강하다. 오랫동안 ‘서울 단극(單極)체제’를 유지해왔다. 함경도 북쪽 끝에서도, 제주도에서도 ‘상경(上京)’이라고 했던 중앙집권적 문화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을 강조했던 오도된 주자학 탓도 컸을 것이다.

어제 일곱 번째 지방선거를 치렀으니 이젠 좀 달라질까. 서울 거주자들을 유치하기 위한 고양·성남·용인시의 경쟁이 본격화될까. 성남보다 먼저 인구 100만의 ‘밀리언 시티’에 가입한 용인의 약진이 돋보이는 시대다. GTX를 두고 고양과 연합하려는 파주의 전략도 주목된다.

어디서나 관건은 기업이다. 수원이 오랫동안 삼성전자 후광효과를 단단히 누렸지만, 어느덧 인구 70만 명을 넘어선 화성이나 삼성 반도체공장을 유치한 평택의 약진을 보면 방심하지 못할 것이다. 지역 간 경쟁은 인접해 있는 수원 영통과 화성 동탄의 집값에도 바로 영향을 미친다.

이들 도시와 달리 군산, 거제, 통영, 울산 동구는 요즘 ‘살아남기’가 절박한 화두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변변한 사업장 하나 생기지 못하는 곳은 다 위험지역이다. 국내 시·군·구 85곳이 30년 내에 소멸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경쟁에서 밀리는 지자체는 다른 데 합병될 수밖에 없다.

어제 4016명의 지역일꾼이 새로 뽑혔다. 서울시장부터 주민 1만 명의 경북 울릉군 의원까지 다양하다. 지역 간 경쟁이 중시되는 시대,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지역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게 좋겠다. 관건은 기업과 인구 유치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