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 유재석, 이광수 등이 출연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 유재석, 이광수 등이 출연했다. 넷플릭스 제공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인 미국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공략 강화 움직임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방송을 중심으로 한 기존 콘텐츠업계는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생태계를 장악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반면 넷플릭스의 한국 내 콘텐츠 제작 증가와 서비스 확대로 소비자 선택권은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가 맞서고 있다.

◆‘비상’ 걸린 방송업계

넷플릭스 서비스 확대 논란… "시장 잠식" vs "선택권 커져"
넷플릭스는 세계 190여 개국, 1억25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영화·드라마·예능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다. 2016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에서 최근 인력을 늘리고 있다. 오는 21일엔 넷플릭스 창업자이며 최고경영자(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비서실장이자 고문 변호사인 데이비드 하이먼이 방송통신위원회를 방문해 실무자와 만난다.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규제환경을 확인하려는 전략적 행보라는 관측이 많다.

넷플릭스 서비스 확대 논란… "시장 잠식" vs "선택권 커져"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딜라이브, CJ헬로 등과 제휴한 데 이어 LG유플러스와의 제휴로 사업 확대를 노린다. 넷플릭스 앱(응용프로그램)이 LG유플러스의 셋톱박스에 기본 탑재될 경우 사용자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상파 계열사와 CJ E&M 등 방송 사업자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는 지난 11일 강력 반발했다. 성명서에서 “일부 유료 방송 사업자가 넷플릭스와 제휴하려고 파격적 수익 배분을 제공하려 한다”며 “콘텐츠 사업자들이 힘겹게 한류를 일구고 있는데 해외 거대 자본이 유리한 거래 조건으로 한류 시장을 송두리째 먹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정책으로 현지 플랫폼 업체와의 수익 배분율을 ‘9(넷플릭스) 대 1’로 못 박고 있지만 국내 업체는 5 대 5에서 7 대 3 구조여서 불공평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난달 17일 지상파 방송사 모임인 한국방송협회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통해 우려 의견을 내놨다.

LG유플러스는 반박했다. “국내 지상파 콘텐츠는 편당 요금 방식이지만 넷플릭스는 월 정액형으로 콘텐츠 제공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료 방송에 단순히 콘텐츠를 공급하는 지상파와 달리 넷플릭스는 콘텐츠 편성과 추천을 하며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것도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는 또 “넷플릭스가 2015년 소프트뱅크를 통해 일본에 본격 진출했으나 점유율은 9%로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콘텐츠 경쟁 불붙나

방송업계가 두려워하는 것은 넷플릭스의 콘텐츠 제작 능력이다.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배달 업체로 출발해 2007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 방향을 바꿨다. 지역별·성별·연령별 이용자들의 작품 취향과 감상 패턴 등을 분석해 맞춤형 작품을 제시하는 큐레이션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3년부터는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나르코스’ 등이 대성공을 거두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면서 현지에 특화한 로컬 콘텐츠를 계속 늘리고 있다. 한국에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에 이어 최근 추리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를 선보였다. 하반기에도 드라마 ‘킹덤’ ‘YG전자’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내놓을 예정이다.

넷플릭스의 올해 콘텐츠 제작 예산은 80억달러(약 8조6300억원)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내 자체 제작과 서비스를 확대하면 지상파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등 기존 콘텐츠 사업자들로선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드라마 킹덤의 회당 제작비는 15억~20억원으로 알려졌다. 대작도 회당 10억원을 넘기 힘든 지상파 드라마와 환경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 방송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로 인해 미국, 유럽 등에선 유료 방송 가입을 해지하는 ‘코드 커팅’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다양화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도 많다. 자본이 풍부한 만큼 한국 콘텐츠 업체들이 시도하지 못한 실험적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제작 즉시 세계로 스트리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체기에 빠졌던 일본 애니메이션업계가 넷플릭스 투자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한 예다.

한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국 영화계는 극장의 국산 영화 의무상영제(쿼터제)를 폐지하면 외국 영화에 시장을 다 빼앗길 것이라며 강력 반대했다”며 “하지만 쿼터제 폐지 이후 국산 영화 경쟁력이 오히려 높아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