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참패로 전면 쇄신 요구에 직면한 자유한국당 산하 정책기관인 여의도연구원. /한경DB
6·13 지방선거 참패로 전면 쇄신 요구에 직면한 자유한국당 산하 정책기관인 여의도연구원. /한경DB
‘여연(여의도연구원)이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한때 여의도 정가엔 이런 말들이 오가곤 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前身)들이 여당이던 시절 얘기다. 1995년 한국 최초의 보수 ‘싱크탱크’로 탄생한 여의도연구원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일개 여론조사기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한국당 지도부 회의 석상에 정밀한 경제진단 보고서가 올라온 지도 오래됐다. 지방선거 참패 등 한국 보수당의 몰락 배경엔 보수 가치와 철학을 지탱할 ‘두뇌’가 사라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뒤엔 거대 진보 ‘싱크탱크’

한국당의 처지는 더불어민주당 사례와 비교하면 좀 더 극명해진다. 2008년 대선 패배 이후 ‘정책 학습’을 위해 꾸린 민주연구원(당시 민주정책연구원)은 명실상부한 민주당 ‘싱크탱크’로 성장했다. 이진복 민주연구원 실장은 “국민들이 느끼는 민주당의 약점을 채우기 위해 ‘유능한 경제정당 연구회’를 꾸려 경제 이슈 선점에 공을 들여왔고, 연구원 내 국가안보센터를 만들어 정책 신뢰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2006년 지방선거, 2008년 대선, 2012년 총선 등 세 차례에 걸친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이때 가장 먼저 한 일이 ‘두뇌’ 역할을 할 집단의 복원이었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공약과 정책’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약점을 채워넣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유권자들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은 ‘경제’ ‘안보’ 부문에서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각종 연구회 활동도 활발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십시일반 꾸린 정책의견 그룹 ‘더좋은미래’가 2014년에 출발했다. 한 수도권 3선 의원은 “총선 패배 이후 의원 전체가 수련원에 모여 봉체조를 했을 정도로 위기감이 높았고 절실했다”며 “의원들이 정책학습을 하지 않고 정책 주도권을 쥐지 않는다면 비전이 없다는 의식이 당내에 팽배했다”고 말했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비교적 순항하고 있는 이유도 민주연구원 등 당내 싱크탱크가 정책 밑바탕을 마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당대표는 물론 대선 후보, 당원들이 비공개로 모여 설득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을 펼쳤다”며 “정책 엑스포 등을 통해 감이 아니라 실제 성공사례들을 국가 전체로 확대시키기 위한 노력도 해왔다”고 강조했다.
무너진 보수 싱크탱크… 여의도硏, 여론조사 기관으로 전락
두뇌 사라진 한국의 보수당

한국당도 이번 6·13 지방선거까지 전국 단위 선거에서 세 차례 연속 패배했다. 하지만 회복을 위한 ‘싱크탱크’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정당 싱크탱크로서 독보적인 역할을 해온 여의도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으로 추락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한때 여의도연구원에서 만드는 여론조사와 정세분석·정책보고서는 대외비로 구분돼 당대표에게 직보됐다. 그만큼 핵심 정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최고의결기구인 최고위원회의가 열릴 때는 여의도연구원 리포트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며 “없으면 회의가 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여의도연구원장은 ‘정책통’을 자처하는 보수 정치인들이 서로 맡고 싶어 했던 자리였다. 과거 윤여준 전 장관, 고(故) 박세일 전 의원,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현 한경대 총장) 등이 원장을 지냈다. 한국당 현역의원 가운데서는 경제·정책통으로 불리는 김광림·김종석·추경호 의원 등이 원장을 맡았다.

당 핵심 전문가 집단이었던 여의도연구원의 명성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홍준표 전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대선후보 시절 “시중 여론조사와는 달리 우리가 이기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며 그 근거를 연구원 내부 조사자료라고 밝히면서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홍 전 대표는 지난 3월21일에도 여의도연구원 조사 결과 자당 후보가 상대 후보를 압도하는 지지율이 나왔다고 말했다가 선거당국으로부터 2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기도 했다.

박재원/박종필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