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광릉숲 이야기
남양주 광릉(光陵)에는 조선 세조와 정희왕후가 나란히 누워 있다. 세조는 1468년 5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이곳을 묘역으로 정하며 “돈 많이 쓰지 말고 간소하게 조성하라”고 명했다. 석곽과 묘실도 따로 두지 말라고 했다. 백성의 노역과 비용을 줄이고, 자신도 빨리 흙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광릉을 둘러싼 숲은 능림(陵林)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이후 광릉숲은 550년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훼손되지 않아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넓이는 2238㏊(680만 평)로 의정부, 남양주, 포천에 걸쳐 있다. 이 숲에는 천연기념물인 참매, 붉은배새매 등 귀한 동식물이 산다.

침엽수 중에서 가장 큰 나무는 높이 41m, 직경 120㎝의 전나무다. 계곡과 가까운 언덕에도 밑동 둘레가 4m나 되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다. 유네스코는 광릉숲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2010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했다.

한때는 시련기도 있었다. 광복과 6·25 직후에는 땔감을 노리는 도벌꾼 때문에 애를 먹었다. 산림과학원 자료에 도벌꾼으로부터 나무를 지키기 위해 초막을 짓고, 숲속에서 잠복근무를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1960~1970년대에는 솔잎혹파리 때문에 소나무가 대부분 고사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등으로 대체했다.

광릉숲 전체의 절반인 1119.5㏊는 국립수목원(옛 광릉수목원)이 관리하고 있다. 수목원 남쪽 끝의 전나무숲 풍광이 아주 좋다. 1927년 월정사에서 씨앗을 가져다 키운 묘목들이 울창하게 자랐다. 피톤치드는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사이에 많이 나온다. 하루 5000명 이내로 예약자만 방문할 수 있다.

수목원을 제외한 나머지 숲은 보존을 위해 막아놨다. 일반에 처음 공개된 2006년부터 해마다 이틀씩만 문을 연다. 올해는 이번 주말인 16~17일에 개방한다. ‘광릉숲축제’도 열린다. 참가자들이 걸을 수 있는 숲길 6.5㎞는 수목원 쪽이 아니라 봉선사 쪽에서 출발한다. 숲길 입구의 ‘웃는 눈썹 바위’를 비롯해 희귀한 나무와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숲향기를 한껏 즐기면서 왕릉까지 둘러보면 금상첨화겠다. 길섶에서 달달한 추억을 떠올리며 나희덕 시 ‘숲에 관한 기억’의 한 구절을 읊조려도 좋겠다. ‘숲을 향해 너와 나란히 걸었던가?/ 꽃그늘에 입을 맞추었던가?/ 우리의 열기로 숲은 좀 더 붉어졌던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