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아무렇게나 써먹는 도시락 같아"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의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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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통합과기자문회의 앞두고 간담회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이 단순한 산업체 지원이나 일자리 창출 등 본연의 목표가 아닌 곳에 사용되면서 R&D 정책이 누더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막대한 R&D 예산을 쓰는 출연연구기관의 개편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정작 손을 놓고 있고 이번 과학기술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한 과학기술혁신본부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는 정부의 과학기술 최고 자문·심의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염한웅 포스텍 교수(사진)의 입에서 나왔다. 염 부의장은 1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R&D에 대한 기본철학이 없는 것 같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염 부의장은 지난해 8월 대통령 과학 정책을 보좌하는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에 올랐다. 과학계 원로나 석학이 맡던 자문회의 부의장에 50대초의 과학자가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과기자문회의는 지난 4월 정부 R&D 사업과 예산을 배분·조정·심의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기능을 통합해 위상을 한층 강화했다. 오는 29일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과기자문회의와 과기심의회 통합을 알리는 첫 전원회의가 열린다. 염 부의장은 출연연의 정확한 역할 설정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과학기술 정책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R&D 정책을 다른 정책에 활용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써먹는 도시락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철학이 있는 R&D 정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전 정부에서도 출연연의 개편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됐다. 문제가 뭔가.
“출연연의 최대 문제는 연구를 못하고 잘 안돌아가는 사업에 돈을 쓴다는 점이다. 연구원장들은 연구소를 연구소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연구소는 본래 연구를 잘 해야 하는데 행정을 잘하는 사람을 원장에 앉혔다. 행정만 잘하는 사람을 시킨다면 연구소가 잘 돌아가겠나. 출연연의 연구 경쟁력이 높으면 모를까 지금은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이 원장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출연연을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한데 정부에서 그동안 주도한 평가는 연구 질이나 내용과 관련 없는 것을 평가했다.”
▶출연연이 연구를 잘 못하는 이유는 뭔가.
“지금의 출연연에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맨파워’가 없다. 잘 돌아가는 곳은 KIST 정도뿐이다. KIST가 연구를 잘 하는 이유는 학생 연구원이란 하부구조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서 끊임없이 공급된다. 하지만 다른 지방은 물론 대전조차 와서 일할 학생 연구원이 없다. 출연연이 학생 연구원이 없어서 연구가 잘 안된다고 하는 게 맞냐는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출연연에 오래 일한 분들 중 상당수가 연구를 안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연구원당 논문수를 보면 형편없는 숫자가 나온다. 연구를 하는 인력구조와 하부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외부수탁과제(PBS) 시스템이 연구 환경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PBS 문제가 핵심이라고 보지 않는다. 미국의 출연연들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미국은 100% PBS를 도입했다. 그래서 PBS 때문에 연구를 못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PBS로 하는 연구 예산이 있고 각종 프로젝트에서 받아가는 예산이 있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출연연의 몫을 미리 빼놓다. 출연연에 결국 다 주고 있다. 정부의 재정 운영구조상 PBS를 바꾸기는 어렵다. 또 설령 PBS를 폐지한다고 해서 갑자기 하부구조가 생기겠나.”
▶출연연 연구자들의 인건비 문제를 겪는다.
“(현재 구조상)출연연이 연구를 안 하고 과제를 따러 다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과제 금액이 적어서 연구원당 과제를 평균 3개씩 해야 인건비를 겨우 맞춘다. 1명이 과제 3개를 어떻게 하나. 과제를 3개씩 해야 인건비가 나오는 구조는 말이 안 된다. 실제로 과제수를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 개인 과제가 아니라 집단 장기 과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연구원들은 과제를 안 따러 다녀도 된다. KIST는 연구 규모를 크게 설계해서 예산을 많이 잡아놓고 센터 중심으로 작동한다.”
▶출연연은 앞으로 계속 필요하나.
“지난 정부는 출연연에 중소기업을 지원하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렸고 결국 방향성을 잃었다. 예전에는 대학이든 출연연이든 국가 기간산업을 지원하는데 목표를 뒀다. 그래서 지금의 정부R&D는 중소벤처를 지원해야 된다는 프레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소 벤처기업의 R&D와 정부 R&D는 서로 맞지 않다. 그러다 보니 중소벤처에 돈을 퍼주는 식으로 R&D를 해왔다. 당장 정부 R&D가 중소 벤처기업의 R&D를 통해 상품이 되지 않고 있다. 중소벤처 기술 수준이 높은 독일에서는 기업들이 프라운호퍼연구소에 과제를 준다.“
▶출연연은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하나.
“국내 출연연들은 대학에서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표준에 관한 연구를 별로 하지 않는다. 나머지 연구들은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연구들이다. 물론 모두 대학으로 넘기라는 뜻은 아니다. 극지연구소나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처럼 정말 출연연에서 할 것만 남기고 대학에 넘길 것은 넘겨야 한다고 본다. 출연연에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라는 것도 잘못됐다. 출연연이 그런 능력은 없다. 신산업은 민간에서 나오는 것이지 정부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에서는 하지 않는 기초연구와 실질적인 공공연구가 필요하다. 미국의 대학을 가보면 기업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들은 기업체가 하는 연구를 하지 않는다. 기업이 안하는 연구를 찾아서 한다. 출연연은 대학처럼 기초연구를 계속해서 하고 기업이 하지 않는 공공연구를 해야 한다. 지진이나 라돈침대 문제 같은 현안은 정부 연구소에서 답을 내야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미세문제 해법도 마찬가지다. 환경부가 못하면 출연연이 답을 내야 한다. 출연연을 통해 기초와 공공 연구를 살리고 신산업은 민간이 잘 하도록 정부 역할을 줄이는 게 맞다.”
▶공공연구는 좋지만 평가는 어떻게 할 거냐.
“현재는 출연연을 논문수, 특허 기술료 수입 등으로 평가한다. 공공연구 하는 사람한테 이 기준을 적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천문연이 하는 연구 평가는 어렵지 않다. 저명한 천문학자 몇 명 불러서 5년간 연구 수준 학술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1년 단위 평가를 하지 말자는 거다. 무엇보다 연구 과제수를 줄여야 한다. 300개를 40개로 줄이고 대형 연구센터의 성과를 3~5년 단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출연연을 큰 틀에서 바꿀 의지는 있나.
“출연연이 정부 R&D 절반 이상을 담당하지만 출연연 개혁 문제에 대한 의지는 별로 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출연연 변화가 국정 과제에 담겨 있지 않고 핵심적인 본질을 건드리는 것 같지도 않다.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잡는 것부터 시작이다. 다만 정부 정책에 따라 출연연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막아보자는 암묵적 합의는 있다. 다만 모든 혁신에는 저항, 관성이 있다. 한국의 출연연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구조이고 관성이 어마어마하다.”
▶과기정통부는 어떻게 평가하나
“R&D는 철학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데, 과학자의 말을 잘 안 들으려 한다. 과학정책을 마치 다른 정책에 활용하기 위한 도시락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거나 다른 분야의 정책을 펴는데 R&D예산을 쓰면서 누더기가 된다. 선진국의 정부 R&D 틀로 가져갈 것인가는 시간이 걸릴 문제다. 정부가 생각하는 선택과 집중도 다시 고민해야 한다. 빠르게 지식이 창출되면서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데 정부가 무슨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겠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부 R&D 기본 철학이 없는 것 같다.”
▶부처마다 R&D 예산이 많은데 잘 돌아가나.
“부처 단위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환경부는 대부분 R&D 예산을 환경산업 지원 육성에 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해결하고 수질 연구를 해야 하는데, R&D예산을 환경산업 지원육성에 쓴다. 환경부의 R&D 5개년 계획이라는 게 환경기업 몇 개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로 보건사업 지원 육성에 R&D 예산을 많이 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R&D가 얼마나 많겠나. 그래서 정부에서 이를 해줘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R&D를 보면 과연 그런 걸 정부 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새 정부가 만든 자문회의와 혁신본부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이전 정부에서 자문회의는 청와대나 부처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번 정부에선 자문회의 위원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혁신본부 역할은 아직까지 미미하다. 과학계 이야기는 과학기술보좌관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 대통령으로 올라가지만 과기보좌관 목소리가 얼마나 위로 올라가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염 부의장은 지난해 8월 대통령 과학 정책을 보좌하는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에 올랐다. 과학계 원로나 석학이 맡던 자문회의 부의장에 50대초의 과학자가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과기자문회의는 지난 4월 정부 R&D 사업과 예산을 배분·조정·심의하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기능을 통합해 위상을 한층 강화했다. 오는 29일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과기자문회의와 과기심의회 통합을 알리는 첫 전원회의가 열린다. 염 부의장은 출연연의 정확한 역할 설정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과학기술 정책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R&D 정책을 다른 정책에 활용하기 위해 아무렇게나 써먹는 도시락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며 철학이 있는 R&D 정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전 정부에서도 출연연의 개편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됐다. 문제가 뭔가.
“출연연의 최대 문제는 연구를 못하고 잘 안돌아가는 사업에 돈을 쓴다는 점이다. 연구원장들은 연구소를 연구소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연구소는 본래 연구를 잘 해야 하는데 행정을 잘하는 사람을 원장에 앉혔다. 행정만 잘하는 사람을 시킨다면 연구소가 잘 돌아가겠나. 출연연의 연구 경쟁력이 높으면 모를까 지금은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이 원장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출연연을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중요한데 정부에서 그동안 주도한 평가는 연구 질이나 내용과 관련 없는 것을 평가했다.”
▶출연연이 연구를 잘 못하는 이유는 뭔가.
“지금의 출연연에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맨파워’가 없다. 잘 돌아가는 곳은 KIST 정도뿐이다. KIST가 연구를 잘 하는 이유는 학생 연구원이란 하부구조가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학에서 끊임없이 공급된다. 하지만 다른 지방은 물론 대전조차 와서 일할 학생 연구원이 없다. 출연연이 학생 연구원이 없어서 연구가 잘 안된다고 하는 게 맞냐는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출연연에 오래 일한 분들 중 상당수가 연구를 안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연구원당 논문수를 보면 형편없는 숫자가 나온다. 연구를 하는 인력구조와 하부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외부수탁과제(PBS) 시스템이 연구 환경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PBS 문제가 핵심이라고 보지 않는다. 미국의 출연연들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미국은 100% PBS를 도입했다. 그래서 PBS 때문에 연구를 못한다는 건 아닌 것 같다. PBS로 하는 연구 예산이 있고 각종 프로젝트에서 받아가는 예산이 있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출연연의 몫을 미리 빼놓다. 출연연에 결국 다 주고 있다. 정부의 재정 운영구조상 PBS를 바꾸기는 어렵다. 또 설령 PBS를 폐지한다고 해서 갑자기 하부구조가 생기겠나.”
▶출연연 연구자들의 인건비 문제를 겪는다.
“(현재 구조상)출연연이 연구를 안 하고 과제를 따러 다녀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과제 금액이 적어서 연구원당 과제를 평균 3개씩 해야 인건비를 겨우 맞춘다. 1명이 과제 3개를 어떻게 하나. 과제를 3개씩 해야 인건비가 나오는 구조는 말이 안 된다. 실제로 과제수를 줄여주는 게 중요하다. 개인 과제가 아니라 집단 장기 과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연구원들은 과제를 안 따러 다녀도 된다. KIST는 연구 규모를 크게 설계해서 예산을 많이 잡아놓고 센터 중심으로 작동한다.”
▶출연연은 앞으로 계속 필요하나.
“지난 정부는 출연연에 중소기업을 지원하라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렸고 결국 방향성을 잃었다. 예전에는 대학이든 출연연이든 국가 기간산업을 지원하는데 목표를 뒀다. 그래서 지금의 정부R&D는 중소벤처를 지원해야 된다는 프레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중소 벤처기업의 R&D와 정부 R&D는 서로 맞지 않다. 그러다 보니 중소벤처에 돈을 퍼주는 식으로 R&D를 해왔다. 당장 정부 R&D가 중소 벤처기업의 R&D를 통해 상품이 되지 않고 있다. 중소벤처 기술 수준이 높은 독일에서는 기업들이 프라운호퍼연구소에 과제를 준다.“
▶출연연은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하나.
“국내 출연연들은 대학에서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표준에 관한 연구를 별로 하지 않는다. 나머지 연구들은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연구들이다. 물론 모두 대학으로 넘기라는 뜻은 아니다. 극지연구소나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처럼 정말 출연연에서 할 것만 남기고 대학에 넘길 것은 넘겨야 한다고 본다. 출연연에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라는 것도 잘못됐다. 출연연이 그런 능력은 없다. 신산업은 민간에서 나오는 것이지 정부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민간에서는 하지 않는 기초연구와 실질적인 공공연구가 필요하다. 미국의 대학을 가보면 기업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들은 기업체가 하는 연구를 하지 않는다. 기업이 안하는 연구를 찾아서 한다. 출연연은 대학처럼 기초연구를 계속해서 하고 기업이 하지 않는 공공연구를 해야 한다. 지진이나 라돈침대 문제 같은 현안은 정부 연구소에서 답을 내야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심각한 미세문제 해법도 마찬가지다. 환경부가 못하면 출연연이 답을 내야 한다. 출연연을 통해 기초와 공공 연구를 살리고 신산업은 민간이 잘 하도록 정부 역할을 줄이는 게 맞다.”
▶공공연구는 좋지만 평가는 어떻게 할 거냐.
“현재는 출연연을 논문수, 특허 기술료 수입 등으로 평가한다. 공공연구 하는 사람한테 이 기준을 적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천문연이 하는 연구 평가는 어렵지 않다. 저명한 천문학자 몇 명 불러서 5년간 연구 수준 학술적으로 평가하면 된다. 1년 단위 평가를 하지 말자는 거다. 무엇보다 연구 과제수를 줄여야 한다. 300개를 40개로 줄이고 대형 연구센터의 성과를 3~5년 단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출연연을 큰 틀에서 바꿀 의지는 있나.
“출연연이 정부 R&D 절반 이상을 담당하지만 출연연 개혁 문제에 대한 의지는 별로 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출연연 변화가 국정 과제에 담겨 있지 않고 핵심적인 본질을 건드리는 것 같지도 않다.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잡는 것부터 시작이다. 다만 정부 정책에 따라 출연연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막아보자는 암묵적 합의는 있다. 다만 모든 혁신에는 저항, 관성이 있다. 한국의 출연연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구조이고 관성이 어마어마하다.”
▶과기정통부는 어떻게 평가하나
“R&D는 철학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데, 과학자의 말을 잘 안 들으려 한다. 과학정책을 마치 다른 정책에 활용하기 위한 도시락 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거나 다른 분야의 정책을 펴는데 R&D예산을 쓰면서 누더기가 된다. 선진국의 정부 R&D 틀로 가져갈 것인가는 시간이 걸릴 문제다. 정부가 생각하는 선택과 집중도 다시 고민해야 한다. 빠르게 지식이 창출되면서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데 정부가 무슨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겠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부 R&D 기본 철학이 없는 것 같다.”
▶부처마다 R&D 예산이 많은데 잘 돌아가나.
“부처 단위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환경부는 대부분 R&D 예산을 환경산업 지원 육성에 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해결하고 수질 연구를 해야 하는데, R&D예산을 환경산업 지원육성에 쓴다. 환경부의 R&D 5개년 계획이라는 게 환경기업 몇 개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로 보건사업 지원 육성에 R&D 예산을 많이 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R&D가 얼마나 많겠나. 그래서 정부에서 이를 해줘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R&D를 보면 과연 그런 걸 정부 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새 정부가 만든 자문회의와 혁신본부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이전 정부에서 자문회의는 청와대나 부처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번 정부에선 자문회의 위원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혁신본부 역할은 아직까지 미미하다. 과학계 이야기는 과학기술보좌관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 대통령으로 올라가지만 과기보좌관 목소리가 얼마나 위로 올라가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