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프게 돌아가셨는데 아직 유해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유전자 감식 기술을 통해 돌아가신 분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6·25 전사자 유해 모두 가족 품으로 보내야죠"
이종은 디엔에이링크 대표(55·사진)는 최근 시작한 ‘제주 4·3사건’ 희생자의 유전자 감식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주 4·3사건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의 무장봉기에서 비롯된 민간인 등 학살 사건을 말한다. 이 대표는 “희생자 유해 신원 감식작업을 총괄하는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지난달 계약을 맺었다”며 “현재 발굴된 유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279구의 유전자를 감식하는 작업을 벌인다”고 말했다. 그는 “7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유전자가 상당히 훼손돼 기존 기술로는 감식이 어렵다”며 “한층 진화된 감식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감식 작업이 적잖은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자신했다.

디엔에이링크는 이번 유해 감식 작업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신원확인용 단일염기다형성(SNP) 검사 DNA칩을 활용한다. 기존 신원확인 기술은 훼손된 DNA로는 분석이 어렵고 동일인이나 친자가 아니면 식별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대표는 “DNA가 훼손됐더라도 식별이 가능한 데다 직계가 아닌 2촌, 3촌 관계로도 감식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1985년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분자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암연구소 선임연구원, 마크로젠 대표 등을 거쳐 2000년 디엔에이링크를 창업했다. 유전자 검사 전문업체인 디엔에이링크는 의약품 동물실험에 주로 쓰는 ‘아바타 마우스’도 개발, 판매하고 있다.

디엔에이링크는 6·25전쟁 전사자 유해 감식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가족을 찾지 못한 다른 사건 희생자나 6·25 전사자의 유해도 감식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는 “국군이 지금까지 약 1만 구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는데 이 가운데 9900여 구는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그나마도 군번표 등을 보고 확인한 게 약 80구고 DNA 검사로 찾은 것도 20여 구에 불과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학살·전쟁 등의 희생자 유전자 감식으로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그는 “베트남 정부와 베트남 전쟁 희생자에 대한 유전자 감식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지난달에는 이스라엘 민간 과학자가 찾아와 홀로코스트 희생자 유해의 유전자 감식 문제를 협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 전쟁으로 희생자가 생긴 곳에서도 유해 발굴 작업 가능성이 있어 유전자 감식 분야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