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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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 총수 일가를 향해 일감 몰아주기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일부 계열사 보유 지분을 정리하라고 압박하면서 관련업체들의 주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김 위원장은 지분매각 대표 사례로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을 지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너 일가가 보유 중인 계열사 지분을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주가 하락세가 과도했다는 판단이다.

18일 오후 3시10분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에스디에스는 전 거래일보다 2000원(1.02%) 내린 19만4500원에 거래중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 15일에는 14% 급락했다.

신세계그룹 정보통신기업 신세계 I&C도 이날 8% 가까이 떨어졌다. 이 회사도 15일 14%에 가까운 폭락을 경험했다.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제일기획은 각각 7%, 4%대, 물류회사 CJ대한통운 GS리테일 등도 약세를 보였다.

공정위가 재벌 총수일가에 비주력·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매각할 것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의 대주주 일가는 주력 핵심 계열사의 주식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빨리 매각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지분 매각이 어려우면 계열을 분리하라는 지침도 전했다.

그간 그룹 내 SI나 물류, 광고 계열사들은 그간 총수 일가의 부당 내부거래 수단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부는 편법적인 승계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제재를 받는 사례도 나왔다. 이에 김 위원장이 자발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해소할 것으로 당부한 것이다.

다만 주식시장에서는 관련 업체들이 대기업 계열에서 벗어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 부각되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보다는 단기 모멘텀 부족이 야기한 현상"이라며 "주요 투자자의 지주 업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높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멘텀 부족으로 인해 지주업종의 반등이 어느 시점에서 나올지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내놨다. 최근 지방선거 이후로 여당의 국회 장악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의 재벌 개혁 발언이 빠른 법안 시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면서 관련 업종의 조정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법안 추진이 가속화되면 대기업 집단의 지분 매각·합병 등이 보다 본격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규율대상 확대 법안이 포함돼 있어, 9월 정기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규제 대상 기업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재벌 기업들의 규제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동반되면서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한 업종과는 연관이 없는 종목까지 주가 하락세가 두드러졌다는 분석이다. 발언 당일에는 삼성그룹의 삼성카드 호텔신라 삼성생명 에스원 등을 비롯해 현대비엔지스틸 현대차투자증권 등도 내렸다.

하지만 주가 하락세가 과도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관련 기업의 오너 일가 지분이 시장에 출회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양 연구원은 "사유재산 침해 등의 이슈로 인해 오너일가 지분이 강제로 매각될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해당 기업에 대한 조사 및 규제 등의 이슈를 감안하면 오너 일가 지분의 계열사 편입 등은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삼성에스디에스와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등의 오너일가 지분은 매물로 나오기 보다는 계열사에서 인수하는 방향으로 지분구조 개편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어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개발, SI·광고·물류기업이라는 이유로 하락한 종목은 반등 가능성이 높다"며 "대표적으로 제일기획이 이에 해당한다"고 지목했다.

따라서 이번 주가 하락기에 관련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을 추천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SDS, 신세계 I&C, 제일기획 등은 금융 감독당국 규제가 강화된 이후에는 과거 대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 오너 프리미엄이 주가에서 소멸된 지 오래"라며 "오너의 지분 소유 여부를 떠나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기반한 실적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주가 하락이 매수 기회로 삼아라"고 당부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