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의점에서 파는 1만원 이내 재료로 위스키 칵테일을 만들어라.’ 조니워커와 윈저를 판매하는 위스키업체 디아지오가 올해 한국에서 전 세계 바텐더들의 올림픽 ‘월드클래스’를 열면서 던진 주제다. 고급 술의 대명사인 위스키가 편의점 제품을 기반으로 세계 대회를 펼친다는 점에서 업계에 파장이 컸다.

#2. 저도주 위스키 돌풍을 이끌어온 골든블루는 지난 18일 주력 제품인 ‘팬텀 디 오리지널’ 가격을 10% 인하했다. 가격을 낮춰 20~30대 소비자를 더 끌어들여 위스키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취지다.

위스키 시장이 10년째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업계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위스키 판매량은 2008년 대비 거의 반토막 났다. 출고량은 2008년 286만 상자(9L 기준·500mL 18병)에서 지난해 158만 상자로 감소했다. 40도 미만의 저도 위스키 시장은 성장했지만 정통 위스키 판매량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100만 상자 밑으로 떨어지며 전체 시장이 줄었다. 업체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10년째 내리막길 “끝이 안 보여”

10년 만에 반토막 난 위스키 시장
위스키 시장 위축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시작됐다. 기업들이 접대비를 줄이면서 유흥업소가 타격을 입었다. 2016년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술자리는 더 사라졌고, 지난해부터 거세진 ‘혼술’ 열풍과 수입맥주 공세도 악재가 됐다. ‘미투 열풍’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 회식 문화마저 급격히 위축되면서 위스키업체들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임페리얼)와 디아지오코리아는 자구 노력의 일환으로 차례로 본사를 서울 강북으로 옮기며 ‘강남 시대’의 막을 내렸다. 청담동 플래그십스토어인 조니워커하우스도 5년 만에 문 닫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위스키가 흥청망청 마시는 접대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소용량, 저도주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쉽지 않은 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저도주에 20대 소비자 잡기

위스키업체들은 수년째 위기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과거 40~50대 남성이 주 타깃이었다면 20~30대 젊은 층으로 타깃층도 확대했다. 독주를 기피하는 젊은 층을 위해 저도주 제품을 늘린 게 대표적이다. 2009년 골든블루가 내놓은 저도주가 시장에서 잘 팔리자 디아지오와 페르노리카, 윌리엄그랜트앤선즈 등 위스키 명가들도 저도주를 내놨다.

소용량 위스키도 등장했다.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이나 혼술 열풍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디아지오는 2016년부터 조니워커 레드와 블랙 등 200mL 소용량 제품을 판매 중이다. 싱글몰트 위스키 맥캘란도 저용량 4종을 판매하고 있다. 20대가 열광하는 웹툰과 협업해 위스키 브랜드를 알리는 판촉도 등장했고 핵심 상권 팝업 스토어, 영화관 마케팅 등도 벌이고 있다.
10년 만에 반토막 난 위스키 시장
◆맥주·전통주로 사업 확대

위스키업체들은 맥주, 전통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디아지오는 기네스 등 맥주를 취급하고 있다. 골든블루는 지역 특산주 회사인 오미나라와 협약을 맺고 전국 판매에 나섰다. 칼스버그 맥주의 수입 유통도 시작했다. 면세점 판매와 함께 해외수출팀도 신설했다.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작년 말 베트남에 그린재킷을 수출했다.

업계는 2008년 이후 위스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일본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 젊은 층은 기존의 음주 문화에서 탈피해 위스키와 레몬, 탄산수 등을 혼합해 만드는 칵테일 ‘하이볼’을 대중적인 술 문화로 만들었다. 위스키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생맥주보다 가격도 낮다. 글렌피딕은 이를 벤치마킹해 전국 100여 곳 레스토랑에 글렌피딕 하이볼을 선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도 경기 침체가 지속되던 약 20년간 위스키 수요가 줄었다”면서 “전망은 어둡지만 새로운 소비 문화를 선보이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