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공부만하는 영상 인기
"지루하고 힘든 여정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느낌 줘"
최근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봇노잼’ 얘기다. ‘#같이 공부해요(study with me)’란 제목들로 올라오는 이 영상은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 대학생이 매일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지난 4월 처음 시작된 이 채널의 구독자 수는 3개월 만에 33만 명을 넘어섰다. 봇노잼뿐만 아니다. 유튜브에 따르면 국내 공부 관련 콘텐츠는 4000개를 넘어섰다. 올 1분기 조회 수는 전 분기 대비 200% 가까이 늘었다.
\대중의 영상 콘텐츠 활용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영상을 단순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같이 느끼고 같이 배우는 도구로 영상을 활용한다. 이제 콘텐츠 생산자, 수용자들은 영상 콘텐츠를 자신의 성장과 계발 동력으로 삼고 있다.
공부 채널의 인기는 유명한 전문가들의 강의 영상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봇노잼과 같은 일반인 크리에이터들의 채널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영상은 주로 제목에 ‘#with me’를 달고 올라온다. ‘공감’해달라는 메시지다. 지루하고 힘든 여정이지만 누군가와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콘텐츠 생산자, 수용자가 함께 느끼도록 유도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공감의 코드는 막강한 파급력을 가지며 확산되고 있다. 미국 뉴욕의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영상을 올리는 치대생 ‘사랑’의 구독자는 14만 명에 달한다. ‘새벽네시 ASMR’ 채널에 올라온 ‘사각사각 연필소리, 같이 공부해요!’ 영상도 조회 수가 18만 건을 넘어섰다.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자율감각 쾌락반응)은 특정 소리를 반복해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을 뜻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어떤 사람의 뒷모습뿐이며 연필로 뭔가를 계속 쓰는 소리만 들릴 뿐이지만 “시험 기간에 누군가와 함께 공부하는 느낌”이라는 반응을 이끌어 냈다.
스마트폰 덕에 급속히 성장한 영상 콘텐츠 시장은 그동안 ‘재미’라는 요소가 장악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콘텐츠가 조회 수가 높고, 그래야 광고도 많이 붙었다. 갈수록 더 자극적인 영상들이 나온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대중은 이제 재미 그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영상 콘텐츠의 진화는 이미 예견돼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6년 구글이 신생 기업이었던 유튜브를 인수한 것을 떠올려보자. 구글이 유튜브의 잠재력을 발견한 건 중국인 청년들이 찍은 코믹 립싱크 영상 하나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재미가 아니었다. 구글 직원이었던 수전 워치츠키 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전문 스튜디오 없이도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를 가진 일반 대중이 직접 이 시장의 생산자이자 수용자가 돼 다양한 가치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예상대로 기존엔 접하기 힘들었던 독특한 콘셉트의 공부 채널들도 생겨나고 있다.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인체해부학 채널 ‘오쌤인체해부학’이 대표적이다. 애니메이션 학원 강사가 운영 중인 이 채널은 혼자 그림을 아무리 그려도 알기 힘든 인체해부학을 재밌게 다룬다. ‘아픈 허리 잘 드로잉하는 법’ ‘심심한 허벅지 묘사하기’ 등의 영상을 올리는 식이다. 구독자 수도 8000여 명에 이른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이같이 말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엄중한 경고인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다. 그리고 이 희망은 무조건 재미와 자극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영상 콘텐츠를 활용할 줄 아는 지금의 현상에서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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