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CT산업 활성화, 네거티브 규제 전제돼야
2009년 연임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타개하기 위해 독일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민하게 된다. ‘인더스트리 4.0’은 그런 고민 끝에 탄생했다. 초(超)연결성과 초지능성을 바탕으로 생산 시설을 디지털화하고 이들을 상호 연결함으로써 유연하고 탄력적인 생산을 가능케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과 이들에게 원재료를 납품하는 협력사들은 시장의 반응과 고객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노력은 전통적인 제조 강국인 독일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독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그동안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진출했던 지멘스, 보쉬, 아디다스 같은 제조기업을 다시 독일로 돌아오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내 경제를 활성화하는 등 2차 효과를 얻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인더스트리 4.0의 개념을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 분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즉, 모든 산업이 사물인터넷(IoT)이나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기업이 디지털화한다는 것은 그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뿐만 아니라 이들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마저도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화한 기업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과도 쉽게 연결될 수 있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며 기업들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에 대한 자세다. 일찍부터 디지털 전환에 적극적이었던 기업과 이들의 노력이 극대화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규제를 정비한 나라들에서는 다수의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했다. 아마존이나 테슬라 같은 기업뿐만 아니라 에어비앤비, 위워크, 우버 같은 기업은 매출액이나 기업가치 측면에서 전통적인 기업을 압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 이런 혁신적인 기업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과 수많은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던 풀러스는 택시사업자들의 반발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벽을 넘지 못했고, 원격의료 서비스 역시 의사들의 반발과 개인정보보호법 탓에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처음부터 해외에서 창업하려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국내의 다양한 규제를 피해 해외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IoT나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의 활성화를 외치는 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할 것이다. 또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인재 육성을 위해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우리나라의 4차 산업혁명 기반 기술은 미국, 일본, 중국 등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으며 5년 후에도 이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전문 인력이 부족한 데다가 다양한 규제에 가로막혀 마음대로 투자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네거티브 규제 정책이나 규제 샌드박스처럼 융합의 시대에 걸맞은, 유연하고 탄력적인 제도의 도입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