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연평바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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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20> 연평도
풍어의 추억 아련한 '황금의 섬'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20> 연평도
풍어의 추억 아련한 '황금의 섬'

“옛날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어.” 섬이나 포구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번성하던 과거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려니 생각했었다. 잘나가다 지금은 쇠락한 섬이나 포구 사람들은 그 시절의 무용담이 나오면 날이라도 샐 기세였으니. 그런데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그 목격담을 처음 들은 곳은 연평도다. 지금은 남북 분단의 한가운데 화약고 같은 섬. 남북한 정상회담 전까지만 해도 언제 포탄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하게 살던 분쟁지역의 한미한 섬에 불과하지만 한 시절 연평도는 황금의 섬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골드러시 때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갔듯이 이 땅의 골드러시 때 사람들은 돈을 찾아 연평도와 흑산도 같은 서해의 섬으로 몰려들었다.

오죽했으면 ‘돈 실러 가자’는 노래까지 생겼을까. 서해 바다에 돈이 지천으로 깔리던 시절. 그 한가운데 연평도 파시가 있었다. 봄 파시 철이면 연평도 어업조합 출납고가 한국은행 출납고보다 더 많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연평도 어업조합 전무하지 황해지사 안 한다’고 할 정도로 권세가 드높던 섬이기도 했다. 그것이 다 연평도가 황금의 섬이었던 까닭이다. 파시 때면 종이보다 흔한 것이 돈이었다. 그래서 어부들이 술에 취해 길을 가다 급하게 변이라도 보고나면 화장지가 없으니 돈으로 뒤를 닦는 일도 흔했다. 그 똥 묻은 돈 냄새를 맡고 개들이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 선주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돈다발을 물고 다니는 개도 있었다.


조기파시로 불야성 이루던 곳




연평 바다 조기 사라지며 파시도 소멸

세종 때도 연평도 특산물로 조기가 등장
연평도가 조기잡이의 메카가 된 것은 임경업 장군과 관련이 깊다. 전설에 따르면 1634년 의주 부윤이던 임경업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훗날의 효종)을 구출하기 위해 황해를 건너 중국으로 가던 중 연평도에 정박했다. 그때 임장군이 식량 조달을 위해 병사들로 하여금 가시나무를 베어다 안목 바다에 꽂아놓게 했는데 물이 빠지자 수많은 조기가 가시에 꽂혔다. 이 일을 계기로 임경업은 서해 바다 조기의 신으로 등극했고 연평도에도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생겼다. 물론 임경업이 연평 사람들에게 조기 잡는 법을 알려줬다는 것은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미 임경업 이전 시대인 세종실록 지리지에 연평도 특산물로 조기가 등장하고 중종실록에는 어전을 둘러싼 다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민들은 위험한 바다에서 의지할 존재가 필요해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떠받들고 모셨다.
지금은 인천 옹진군 소속이지만 본래 연평도는 황해도 해주에 속했었다. 인천에서 연평도까지 거리는 122㎞나 되지만 해주는 30㎞ 거리에 불과하다. 북한 땅인 대수압도, 소수압도 같은 섬들도 본래는 연평도와 같은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었다. 연평도는 대연평과 소연평 두 개의 섬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인데 대연평도라고 해봐야 가로 3.7㎞, 세로 2.7㎞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이다. 이 작은 섬이 과거에는 서해바다 황금시대를 일군 어업역사의 큰 족적을 남겼고 해방 이후에는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었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폭격을 당한 집들 대부분은 철거됐으나 몇 채는 ‘안보관광’용으로 허물지 않고 ‘전시’ 중이다. 부서진 집들은 처참하다. 주민들은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다시 남북 화해와 상생의 시대가 시작됐다. 연평도는 이제 어떤 섬으로 자리매김될까. 인간의 탐욕으로 사라져버린 조기떼가 연평도로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화가 정착한다면 연평도는 또 다른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연평도가 남북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