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2세로 타계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생전 말재주로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김 전 총리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다양한 비유와 은유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데 능했다. 이런 그에게는 ‘능변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김 전 총리는 1963년 중앙정보부 부장 시절 일본과 국교 정상화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비밀 협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며 의지를 확고히 했다.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독도와 관련해선 “독도를 폭파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에 넘겨주지 않겠다”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이후 5·16 군사정변 세력 내 알력으로 외유를 떠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김 전 총리는 ‘충청도 핫바지론’으로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김 전 총리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뒤 치러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충청도가 이놈 저놈 아무나 입을 수 있는 핫바지 취급을 당해왔다”며 충청 민심 결집을 강조해 충청도를 휩쓸었다. 김 전 총리는 2001년 당시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이 자신을 ‘지는 해’에 비유하자 “해는 지면서도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는 말로 응수했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의욕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김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헛된 일)”이라는 ‘뼈 있는 말’도 남겼다. 김 전 총리는 2011년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에게 “기업인은 노력한 만큼 과실이 생기지만 정치인은 열매를 맺어놓으면 국민이 따먹는 것”이라고 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