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감독 민규동)를 이끈 김희애를 만나 가슴을 울리는 이 실화가 스크린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27일 개봉하는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우고 응원한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다.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 재판' 실화를 소재로 했다.
"이 작품은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너무 감사한 시나리오죠. 우리 같이 나이 많은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는데 인간 자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돼서 너무 행복하고 힘이 났어요. 여러 면에서 제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죠."
김희애가 연기한 문정숙은 실존 인물인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을 모델로 했다. 극 중 문정숙은 당찬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여행사 사장이자 일본 정부와 당당히 맞서 싸운 원고단 단장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개인의 삶은 뒤로하고 오직 재판을 위해 6년 동안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쉽지 않은 일이에요. 우연히 발을 들여놓은 상황에서 자기의 재산을 모두 털어가며 끝까지 가잖아요. 이 모습을 보고 사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저도 조금씩 반성했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는 희망이 보였어요.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했죠. 대단한 작품을 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우쳤어요."
문정숙 캐릭터에 맞게 말투, 외모 등 모든 걸 뜯어고치면 좋겠다는 감독의 말에 김희애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몸무게를 5kg 증량했다. 또한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 연기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집에서 대사를 녹음해 다시 듣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연습했다. 김희애는 35년의 연기 인생 중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고 토로했다.
"사투리를 연습하느라 너무 바빴어요. 그냥 열심히 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죠. 사투리가 안 되니까 연기 자체가 함량 미달로 나오더라고요. 못 들어줄 정도라서 계속 듣고 모니터 하면서 바꿔나갔어요. 고통스러운 만큼 제가 연기자로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라 믿고 싶어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에 배치된 시모노세키 법정 장면이다. 할머니들이 고통을 털어놓음과 동시에 감정을 꾹꾹 누르며 강한 울림을 전달해야 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도 이 한 장면에 대한 책임감은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 연기를 펼쳤고 격한 감정을 끌어올린 탓에 촬영 후엔 몸살까지 않았다고 한다.
"선배님들이 정말 힘들어하셨어요. 석 달 전부터 그 신을 찍으려고 얼마나 노력하셨겠어요.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감동을 주려는 것보다 실제 할머니들의 입장을 최대한 가깝게 대변하려고 최선을 다하신 것 같아요."
김희애는 영화 출연 때문에 관부 재판 실화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부끄럽다고 반성했다. 영화가 개봉한 뒤엔 분명히 자신에게 또 다른 변화가 있을 거라 확신했다. '허스토리'는 그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자 배우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작용했다.
"관객들이 영화에 공감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모되는 데에 '허스토리'가 작은 보탬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