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자유를 스스로 훼손하는 국민들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한국 팀이 스웨덴 팀에 지자 청와대 게시판에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에 대한 세무조사를 요청하고, 특정 선수를 국가대표에서 제명해 달라는 등의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고 한다. 이는 일부 국민들이 축구 경기에 진 분노와 불만을 일시적으로 표출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내재된 위험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가 보이고, 모든 문제 해결을 왕에게 기대는 왕조시대 신민처럼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하려는 우리 국민들의 생각이 보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는 청원은 이번 월드컵 경기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야구 국가대표 선발, 개인과 특정 기업에 대한 현안 등 민간 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대단히 많다. 대통령에게 청원하는 것은 비단 이번 정부의 청와대 게시판만이 아니다. 과거부터 개인적인 일, 기업과 단체 관련 일 등을 일간지에 광고 형식으로 탄원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있어 왔다.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하는 청원은 국정과 관련된 것이어야만 한다. 그 이외의 것들, 특히 민간 부문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청원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정부와 국가에 예속시키는 행위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할수록 정부는 점점 더 많이 국민들 삶에 개입하고 간섭하게 된다. 정부 권력은 갈수록 커지고, 결국엔 국민 개개인이 아니라 정부가 주인이 되며 국민들은 정부 명령을 받는다.

국민들이 국정과 관계없는 일까지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청원하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가의 권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도 우리는 정부로부터 너무 많은 명령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라거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가맹점 제빵 기사들을 본사에서 직접 고용하라고 하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경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일하는 방식과 근무 형태가 산업마다 기업마다 다를 수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정부가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정부가 강제로 국민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부와 국가의 권력이 커지면 사회가 정치화돼 개인의 자유가 줄어든다. 정치 권력이 개인과 사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정치적으로 돼 가면서 선택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정치에 매몰돼 있으며 그로 인해 자유가 훼손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이한 풍경이 있다. 과거 기업들의 월드컵 광고에는 태극기가 많이 보였다. 그런데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는 기업 광고에 태극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태극기가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처럼 돼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정 정치 세력과는 무관한 태극기가 그렇게 인식되는 것도 그렇고, 정치 권력을 의식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한하는 양상이 나타나서 더욱 그렇다.

이렇게 우리의 자유가 알게 모르게 제약받는 것은 어쩌면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들은 자유를 공짜로 얻어서인지 자유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신들의 자유가 침식되는 것에 무감각하고 자기 자신의 자유를 훼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국가 발전의 정도는 개인의 자유에 달려 있다. 개인의 자유가 많은 국가일수록 발전하며 잘살고 국민들이 행복하다. 원래 개인의 자유란 국가와 정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다. 대한민국을 잘살고 국민이 행복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국가와 정부 권력이 커지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하고, 국가와 정부 권력을 될 수 있으면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 권력을 통한 수혜와 자원 배분을 거부하고 자기 삶은 자신이 꾸린다는 원칙을 세워 생활하며,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철학을 갖고 법과 제도를 정비해 나아가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와 정부의 권력이 커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도록 놔둔다면 차츰 창의성과 역동성이 떨어져 우리 장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