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민간 기업인 협의체인 ‘한·중 고위급 기업인 대화’에 재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와 같은 통상 갈등을 물밑에서 조율할 민간 경제협의체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기업 오너들이 대거 회의체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상의는 29일 중국 베이징에서 ‘제1회 한·중 고위급 기업인 대화’를 연다고 27일 발표했다. 지난해 말 양국 경제단체가 합의한 사항을 이행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대한상의가 공개한 위원 명단을 본 기업인들은 “한국의 간판 대기업 오너가 총출동했다”고 놀라워했다.

경제계 위원 11명 중 8명이 대기업 오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외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준 LG그룹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 간판 대기업 오너가 모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3명은 손경식 CJ그룹 회장과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다.

대기업 오너들이 경제단체가 주관하는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뒤에는 대통령의 해외 국빈 방문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지난달 한·중·일 정상회의 직후 열린 ‘비즈니스 서밋’ 행사에 참석한 기업인(총 13명) 중 대기업 오너는 구자열 LS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3명뿐이었다. 10대 그룹 오너는 한 명도 없었다.

대기업 오너들의 참여를 끌어낸 배경엔 박용만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평소 “중국은 제2의 내수시장”이라며 중국 사업을 직접 챙긴 최 회장은 “사드 사태와 같은 통상 마찰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기업 오너들이 참여하는 고위급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박 회장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가진 부와 자원, 경험을 사회와 공유해야 한다”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과도 맥이 닿아 있다. 박 회장도 “대기업들이 민간 외교에 활발히 나서야 한다”며 고위급 협의체 구성을 적극 추진했다.

좌동욱/박상익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