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형 증권회사 강남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통해 50억원의 금융자산을 굴리는 A씨(55)는 이 중 10억원가량을 해외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담당 PB의 권유로 5억원가량 투자하며 해외주식 ‘직접구매(직구)’를 시작한 그는 미국 나스닥 상장 종목을 중심으로 투자 규모를 점차 늘렸다. A씨는 “상장사 실적 우려 등으로 올해 한국 증시는 재미가 없을 것으로 판단해 해외주식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나스닥 종목에만 투자해 상반기 20% 이상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A씨처럼 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해외 대표 주식들의 ‘화려한’ 수익률을 보고 투자를 시작하거나 국내 증시에 집중된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일부를 떼어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 올 상반기 국내 투자자의 해외주식 직접 매수 규모가 이미 지난해 전체의 76%에 달하는 만큼 올해는 역대 최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인기 해외주식 주가 고공행진

해외주식 투자가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주식보다 성과(수익률)가 좋기 때문이다. 아마존, 알리바바그룹, 텐센트지주회사, 차이나 AMC CSI300 상장지수펀드(ETF), 엔비디아 등 국내 투자자의 상반기 해외주식 매수 상위 10개 종목 상승률(26일 기준)은 평균 15.66%로, 같은 기간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많이 매수한 상위 10개 종목의 평균 상승률(3.74%)의 4배가 넘는다. 종목별로는 넷플릭스(108.05%), 아마존(44.60%), 엔비디아(25.05%), 알리바바그룹(11.01%) 순으로 많이 올랐다. 모두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술주다.

물론 해외 투자가 모두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상반기 미국이 아니라 중국 및 홍콩증시에 상장된 종목 또는 ETF에 투자한 사람은 재미를 못 봤다. 중국 대형주 지수(CSI300) 등락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미국 증시의 차이나 AMC CSI 300 ETF(-12.10%)와 미국 증시에서 거래되는 중국 대형주 ETF 아이셰어즈 차이나 대형주 ETF(-21.42%), 홍콩 증시에 상장된 텐센트(-4.92%) 등은 올해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중국과 홍콩 증시가 미·중 무역분쟁의 ‘직격탄’을 맞아 큰 폭의 조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해외주식 투자자는 투자잔액(20일 현재) 기준으로 미국(비중 44.83%), 중국(17.62%), 일본(15.15%), 홍콩(13.31%), 베트남 등 기타 국가(9.06%) 순으로 주식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

◆고액자산가 관심 뜨거워

해외주식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고액자산가다. 한 증권사 PB는 “해외주식 투자를 권했을 때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고액자산가들이 훨씬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접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 당혹스러울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금융소득과세에 포함되지 않는 점도 자산가들이 해외주식 직구에 매력을 느끼는 요인 중 하나다. 최철식 미래에셋대우 WM강남파이낸스센터 이사는 “해외주식 매매차익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양도소득세가 22% 과세된다”며 “양도세율이 상당히 높은데도 자산가들은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안 내도 된다는 데 더 매력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환차익을 노리고 해외주식 투자에 나서는 투자자도 많다. 류희진 NH투자증권 대구WM센터 부장은 “환율이 연초 달러당 1100원 아래로 내려가고 한동안 박스권에 머물 때 환차익을 노리고 신규 투자에 나선 자산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주식 직접투자자들은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연초 이후 4.58%의 환차익을 보고 있다.

◆확대되는 투자 저변

신재범 NH투자증권 글로벌주식부 부장은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 나스닥지수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요즘은 소액 투자자도 해외 직구에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사들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4월 송금 앱(응용프로그램) ‘토스’를 통해 별도 환전 없이 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미국 40개 종목이 서비스 대상이다.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등은 ‘통합 증거금’ 서비스를 도입했다. 해외주식을 사려면 원화를 해당국 통화로 환전해 투자해야 하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주식 매입에 필요한 금액의 90%를 원화 증거금으로 내고 먼저 투자한 뒤 거래 다음날 환전해 모자란 금액을 채워넣을 수 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