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갑자기 연기된 것을 두고 뒷말이 많지만,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도 있다. 문 대통령이 “답답하다”고 토로하며 언급한 규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것이다.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하다” “우선 허용, 사후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 도입에 더 속도를 내달라”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풀기 어려운 과제는 열 번, 스무 번 찾아가서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나”…. 규제에 꽉 막힌 기업들에는 ‘사이다 발언’으로 들릴 법하다.

당장 내각과 여당은 대통령의 언급을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 어제 종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낙연 총리는 국정현안점검회의를 소집해 “훨씬 더 치열하게 규정과 씨름하고 타성과 싸워야 하며, 이해관계자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더 깊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정말 다를지 주목된다.

하지만 규제 개혁이 대통령 의지만으로 안 된다는 점은 지난 20년간 수없이 확인했다.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수록 관료들은 ‘표지 갈이’로 대응하고, 이익집단 반발은 거세진다. 게다가 현 정부는 ‘규제개혁=친재벌’이라는 지지세력부터 설득하는 게 더 난제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에 버금가는 의지와 결기가 없다면 과거 정권들의 되풀이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규제개혁 성공 여부는 그동안 ‘당연시해 온 것들’까지 과감히 깨는 ‘파괴적 혁신’이 관건이다. ‘도그마’가 돼버린 의료, 유통, 수도권 규제 중에 단 하나라도 푼다면 국민이나 기업이 괄목상대할 것이다. 이를테면 해외 대도시들과 경쟁하는 수도권의 규제를 완화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세입을 비수도권과 나누거나(변양균 전 정책실장), 낙후된 경기북부라도 먼저 풀어줄 수 있겠나. 경제단체들이 수없이 건의해온 ‘불량 규제’들을 대부분 여당부터 반대하는데, 설득할 수 있겠나. 기업을 잠재 범죄집단으로 보는 시각을 교정하고, 일시적 부작용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규제개혁 의지에 대한 신뢰도 생길 것이다.

규제 공급자 시각에서 소소한 행정규제를 몇 건 없애는 수준이면 하나마나다. 수요자 입장에서 만족해야 진정한 규제개혁이 된다. 일단 금지부터 하는 열거식 법체계, 사건사고 때마다 쏟아지는 ‘덩어리 규제’ 입법에서도 혁신이 절실하다. 일본은 AI진료로까지 나아가고, 중국은 서류 한 장으로 창업하며, 동남아에선 공유경제가 만개하고 있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수요 견인’ 정책만으로는 끌어갈 수 없는 세계 11위권 규모다. 지난 1년간 소득주도 성장에 올인했지만 경제지표 악화, 일자리 쇼크로 그 한계가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고 스타트업들로 만족할 만한 성장을 이끌 수도 없다. 주력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까지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는 공급 측면의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야 성장도, 분배도 가능할 것이다. 차후에 열릴 규제혁신 점검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절박하게 논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