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창조적 활력과 지적인 모험… 오이디푸스는 그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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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7) 추적(追跡)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7) 추적(追跡)
아테네인들은 역병(疫病)에 익숙하다. 역병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존재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역병은 전염돼 죽어 가는 사람들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초연된 기원전 429년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인 펠레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년)이 발발한 지 2년이 지난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아테네에는 이미 역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테네 거리에는 스파르타에서 몰려온 피난민으로 우글거렸고 역병이 창궐했다.
전쟁과 역병에 시달린 아테네인들이 원형 극장에 앉았다. 그들은 이 끝이 보이지 않고 바닥이 없는 구덩이에서 그들을 건져줄 영웅이 무대 위에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무대에 등장한 영웅은, 실망스럽게도 모든 것을 당장 해결해 주는 ‘임시응변(臨時應變)의 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아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무대 위에서 비극이 전개되면서 느닷없이 등장해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한순간에 해소시키는 ‘신의 한 수’와 같은 도구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새로운 형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소개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소포클레스는 그를 아테네 정신의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오이디푸스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화신이다. 단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일을 추진한다. 그는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꿈꾸는 아테네 정신이다. 페리클레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 전사자들을 위한 장례연설에서 아테네의 특징을 말한다. “아테네는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말한 바를 반드시 실천한다. 그는 테베를 엄습한 역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동원시켜 진실을 밝혀낸다. 테베는 완전 무장한 보병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며 도시를 마비시킨 오염의 원인을 추적한다.
오이디푸스는 용감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황금기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의 정점인 이유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유 때문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망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그 지혜의 빛을 밝히는 용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뻔뻔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이다.
페리클레스
오이디푸스는 일을 미루지 않는다. 바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주위의 조언을 들으려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테베 사제가 오이디푸스에게 역병이 아테네인들뿐만 아니라 곡식과 가축을 모두 파괴했고, 여인들은 더 이상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상황을 한탄하며 이야기한다.
오이디푸스는 이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처남 크레온을 델피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파송했다. 합창대가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신의 목소리를 듣자고 제안하는 동안, 테이레시아스는 이미 소환돼 테베신전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결심과 행동은 성급하지 않다. 오랜 경험을 통해 연마한 숙고(熟考)의 자식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인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수많은 생각의 길을 헤매고 있음을 아십시오. 나는 두루 살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을 이미 실천에 옮겼습니다.”(《오이디푸스 왕》 66~69행)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고유하다. 가장 용감한 행동을 이성적인 토론과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조그만 도시에 불과한 아테네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군사력이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행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테네인 한 명 한 명이 남들보다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다. 오이디푸스는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쫓아가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신이 아니라 지팡이에 의존하는 노인도 아니다. 자신의 두 발로 당당히 걷는 ‘인간’이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이 가고 싶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은 스파르타인처럼 전문적인 군인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아테네인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마련한 투구와 방패를 구입한 아마추어들이다. 그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터에서 주체적이며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노숙자 떠돌이로 왔지만 지금은 그 테베의 왕이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한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개인은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융통성과 친절함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원형 극장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소포클레스가 의도한 대로 오이디푸스를 페리클레스가 찬양한 아테네와 비교하며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은 오이디푸스를 단순히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괴물’로 본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이디푸스를 아테네 민주주의의 리더들과 자신들의 이상적인 삶의 전형으로 여겼다.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창조적인 활력과 지적인 모험의 극적인 체현(體現)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는 민주주의가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탄생시킨 정신적인 모태(母胎)가 등장했다.
인류는 처음으로 과거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미몽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구축할 미래를 실천하는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함께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그리스 최초의 시인이다. 그는 인류가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저서 《일들과 날들》에서 인류 역사를 다섯 시대로 구분했다. 인간이 신들과 함께 살던 황금시대에서 시작해 은시대와 청동시대, 영웅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마친다. 철기시대는 인간이 부모를 무시하고 형제들과 싸우며, 손님을 대접하는 환대가 사라진 불행한 시대다. 소포클레스는 헤시오도스처럼 과거를 더 이상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황금시대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는 찬란한 미래를 위한 발판이다. 오이디푸스는 과거의 원시적인 야만에서 벗어나 도시국가라는 문명을 견인할 영웅이다.
수색(搜索)
크레온은 델피에서 신탁을 받아 왔다. 역병의 원인은 테베의 선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그 살인자 수색에 착수한다. “나는 그대들 카드모스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그대들 중 누구든지 랍다코스의 아들 라이오스가 어떤 자에게 살해됐는지 아는 사람은 내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라. 이것은 명령이다.”(223~226행) 그러자 합창대 우두머리가 그 범인을 가려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테이레시아스라고 말한다. “내가 알기로 테이레시아스만큼 아폴로신의 의중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283~285행) 오이디푸스는 이미 사람을 보내 테이레시아스를 소환 중이다. “나는 이 일에 늦장을 부리지 않는다. 크레온이 권해서 테이레시아스를 데려오도록 두 번이나 사람을 보냈다. 그가 도착할 때가 됐는데, 왜 오지 않는지 이상하다.”(287~289행)
테이레시아스는 장님이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선명하게 보는 자다. 소년에 이끌려 오이디푸스 앞에 온 예언자는 자신이 본 환시(幻視) 때문에 한탄으로 발설하기를 거절한다. “아아, 슬프도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곳에서 얼마나 괴로운가! 내가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 내가 여기에 왜 왔던가! 내가 여기까지 오지 말 것을!”(316~318행) 예언자는 자신이 말한 예언을 오이디푸스나 테베의 원로들이 감당하기엔 이들이 너무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가 예언하기를 거절하자, 오이디푸스는 그를 몰아붙인다. “예언자여, 나는 너무 화가 난다. 내가 남김없이 내 생각을 말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이 범행을 함께 모의하고 실행했다. 만일 네가 장님이 아니라면, 나는 네가 홀로 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언했을 것이다.”(345~349행) 범인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예언자가 급기야는 진실을 말한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말하겠습니다. 당신입니다. 그 범인은 당신입니다. 도시를 역병으로 괴롭힌 당사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오염은 당신입니다.”(350~353행)
이 상황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과 예언자 나단의 만남과 비슷하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인 히타이트 용병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했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에 보내 전사하도록 일을 꾸몄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왕 앞에서 이 살인죄를 폭로하면서 “당신이 바로 그 살인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 곧바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한다. 그것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덕목이다.
오이디푸스는 다윗 왕과 다르다. 그는 오히려 부인한다. “그따위 말을 하다니. 어쩌면 저토록 뻔뻔할 수 있는가?”(354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찾는 데 적극적이다. 자신에게 떨어진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용감하게 나선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전쟁과 역병에 시달린 아테네인들이 원형 극장에 앉았다. 그들은 이 끝이 보이지 않고 바닥이 없는 구덩이에서 그들을 건져줄 영웅이 무대 위에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무대에 등장한 영웅은, 실망스럽게도 모든 것을 당장 해결해 주는 ‘임시응변(臨時應變)의 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아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무대 위에서 비극이 전개되면서 느닷없이 등장해 도저히 풀릴 수 없는 문제를 한순간에 해소시키는 ‘신의 한 수’와 같은 도구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새로운 형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소개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소포클레스는 그를 아테네 정신의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오이디푸스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화신이다. 단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일을 추진한다. 그는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꿈꾸는 아테네 정신이다. 페리클레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 전사자들을 위한 장례연설에서 아테네의 특징을 말한다. “아테네는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말한 바를 반드시 실천한다. 그는 테베를 엄습한 역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동원시켜 진실을 밝혀낸다. 테베는 완전 무장한 보병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며 도시를 마비시킨 오염의 원인을 추적한다.
오이디푸스는 용감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황금기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의 정점인 이유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유 때문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망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그 지혜의 빛을 밝히는 용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뻔뻔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이다.
페리클레스
오이디푸스는 일을 미루지 않는다. 바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주위의 조언을 들으려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테베 사제가 오이디푸스에게 역병이 아테네인들뿐만 아니라 곡식과 가축을 모두 파괴했고, 여인들은 더 이상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는 상황을 한탄하며 이야기한다.
오이디푸스는 이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처남 크레온을 델피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파송했다. 합창대가 장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로부터 신의 목소리를 듣자고 제안하는 동안, 테이레시아스는 이미 소환돼 테베신전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결심과 행동은 성급하지 않다. 오랜 경험을 통해 연마한 숙고(熟考)의 자식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인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은 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수많은 생각의 길을 헤매고 있음을 아십시오. 나는 두루 살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을 이미 실천에 옮겼습니다.”(《오이디푸스 왕》 66~69행)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고유하다. 가장 용감한 행동을 이성적인 토론과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조그만 도시에 불과한 아테네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군사력이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행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테네인 한 명 한 명이 남들보다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다. 오이디푸스는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쫓아가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신이 아니라 지팡이에 의존하는 노인도 아니다. 자신의 두 발로 당당히 걷는 ‘인간’이다. 그는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이 가고 싶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은 스파르타인처럼 전문적인 군인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다. 아테네인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마련한 투구와 방패를 구입한 아마추어들이다. 그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전쟁터에서 주체적이며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노숙자 떠돌이로 왔지만 지금은 그 테베의 왕이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한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개인은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융통성과 친절함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원형 극장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소포클레스가 의도한 대로 오이디푸스를 페리클레스가 찬양한 아테네와 비교하며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은 오이디푸스를 단순히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괴물’로 본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이디푸스를 아테네 민주주의의 리더들과 자신들의 이상적인 삶의 전형으로 여겼다.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창조적인 활력과 지적인 모험의 극적인 체현(體現)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는 민주주의가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탄생시킨 정신적인 모태(母胎)가 등장했다.
인류는 처음으로 과거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미몽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이 구축할 미래를 실천하는 경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함께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그리스 최초의 시인이다. 그는 인류가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저서 《일들과 날들》에서 인류 역사를 다섯 시대로 구분했다. 인간이 신들과 함께 살던 황금시대에서 시작해 은시대와 청동시대, 영웅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마친다. 철기시대는 인간이 부모를 무시하고 형제들과 싸우며, 손님을 대접하는 환대가 사라진 불행한 시대다. 소포클레스는 헤시오도스처럼 과거를 더 이상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황금시대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는 찬란한 미래를 위한 발판이다. 오이디푸스는 과거의 원시적인 야만에서 벗어나 도시국가라는 문명을 견인할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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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온은 델피에서 신탁을 받아 왔다. 역병의 원인은 테베의 선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그 살인자 수색에 착수한다. “나는 그대들 카드모스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그대들 중 누구든지 랍다코스의 아들 라이오스가 어떤 자에게 살해됐는지 아는 사람은 내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라. 이것은 명령이다.”(223~226행) 그러자 합창대 우두머리가 그 범인을 가려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테이레시아스라고 말한다. “내가 알기로 테이레시아스만큼 아폴로신의 의중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283~285행) 오이디푸스는 이미 사람을 보내 테이레시아스를 소환 중이다. “나는 이 일에 늦장을 부리지 않는다. 크레온이 권해서 테이레시아스를 데려오도록 두 번이나 사람을 보냈다. 그가 도착할 때가 됐는데, 왜 오지 않는지 이상하다.”(287~289행)
테이레시아스는 장님이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선명하게 보는 자다. 소년에 이끌려 오이디푸스 앞에 온 예언자는 자신이 본 환시(幻視) 때문에 한탄으로 발설하기를 거절한다. “아아, 슬프도다! 지혜로운 자는 지혜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곳에서 얼마나 괴로운가! 내가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 내가 여기에 왜 왔던가! 내가 여기까지 오지 말 것을!”(316~318행) 예언자는 자신이 말한 예언을 오이디푸스나 테베의 원로들이 감당하기엔 이들이 너무 취약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가 예언하기를 거절하자, 오이디푸스는 그를 몰아붙인다. “예언자여, 나는 너무 화가 난다. 내가 남김없이 내 생각을 말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이 범행을 함께 모의하고 실행했다. 만일 네가 장님이 아니라면, 나는 네가 홀로 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언했을 것이다.”(345~349행) 범인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예언자가 급기야는 진실을 말한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말하겠습니다. 당신입니다. 그 범인은 당신입니다. 도시를 역병으로 괴롭힌 당사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오염은 당신입니다.”(350~353행)
이 상황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과 예언자 나단의 만남과 비슷하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인 히타이트 용병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했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에 보내 전사하도록 일을 꾸몄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왕 앞에서 이 살인죄를 폭로하면서 “당신이 바로 그 살인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 곧바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한다. 그것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덕목이다.
오이디푸스는 다윗 왕과 다르다. 그는 오히려 부인한다. “그따위 말을 하다니. 어쩌면 저토록 뻔뻔할 수 있는가?”(354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찾는 데 적극적이다. 자신에게 떨어진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용감하게 나선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