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자가 다섯 달째 한국 주식을 팔고 있다.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은 달러당 1100원대를 넘어 급등한 원·달러 환율이다. 급격한 달러 가치 상승으로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 빠르게 등을 돌리고 있다.

선진국 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투자자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우려도 여전해 당분간 외국인이 매수세로 돌아서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장중 2300 붕괴… 외국인, 5개월새 5.7兆 매도
◆환차손 우려에 매도 주문 쏟아내

29일 코스피지수는 장중 17.85포인트(0.77%) 하락한 2296.39까지 떨어져 2300선을 내줬다. 코스피지수 2300선이 깨진 것은 작년 5월22일(2292.95) 후 13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오후 들어 저가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상승 반전해 0.51% 오른 2326.13에 마감했지만 여전히 연중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다섯 달째 팔아치우면서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2월 이후 5조737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달 들어서도 1조5870억원어치를 팔았다.

이 같은 외국인 이탈은 달러화 강세가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8일 원·달러 환율은 1124원20전에 마감해 작년 10월30일 이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름 전까지 1070원 수준이었지만 미·중 통상전쟁이 격화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외국인은 환차손을 우려해 한국 주식을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금처럼 상장사 실적 추정치가 내려가고 무역갈등 등으로 위험 회피심리가 커질 때는 환율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7~8월을 지나면서 달러 강세가 진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교보증권은 올 연말 원·달러 환율이 1040원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간 등 해외 투자은행(IB)의 올 연말 원·달러 환율 예상치 평균도 1078원 수준이다. 신진호 마이다스자산운용 에쿼티부문 대표는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기 전까지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매도세를 멈추더라도 관망하는 모습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무역갈등 해소돼야 귀환”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도 외국인 이탈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2월 급락장을 불러왔던 미국 장단기 금리차 축소가 다시 나타나면서 시장의 공포심리가 커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10년물 국채와 2년물 국채의 장단기 금리차는 33bp(1bp=0.01%포인트)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오르지 않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경기 침체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장기채 매입에 몰리고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장·단기 금리 역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대부분 경기 침체나 금융위기가 닥친 경우가 많았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위험 기피 성향이 뚜렷해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자산을 매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책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장·단기 금리차가 좁혀지는 현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국인투자자의 수급이 ‘과매도 구간’에 진입한 만큼 매도세가 더 커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가증권시장의 올해 기준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주당순이익)이 8.8배까지 떨어져 저평가 매력이 부각될 것이란 예상이다.

서영호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외국인 매도세에는 환율, 기업 실적 등의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미·중 무역갈등”이라며 “7~8월 중 사태가 수습되는 모습이 나타나면 외국인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만수/임근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