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합의안에 대해 “(합의안에 서명하기 전까지) 수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합의안은 내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28일(현지시간) 말했다.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나 자동차 추가 관세 부과, 향후 북한 지원비용 등을 염두에 둔 전략적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위스콘신주 마운트플레전트에서 열린 대만 전자통신기업 폭스콘의 디스플레이 공장 착공식에서 “우리는 한국과 (FTA) 재협상을 했고 양국에 모두 좋은 새 합의안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상 그것은 내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해왔다”며 “왜냐하면 그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한·미 FTA 재협상 타결 뒤 3개월 동안 서명이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나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 국이 합의안 문구를 조율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구체적인 서명 지연 이유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합의안에 대한 법률 검토 등을 거친 뒤 의회에 보고하고 협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8개월에 걸쳐 FTA 재협상을 벌여 올 3월 말 타결지었다. 합의안에는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를 2041년 이후로 미루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또 철강 관세 면제 협상이 함께 진행되면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철강 관세(25%)를 면제받는 대신 철강 수출량을 직전 3개연도 평균의 70%로 줄이기로 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을 질질 끄는 이유가 그가 말한 것처럼 ‘서명 전 있을 많은 일’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7일 방위비 분담금 조정을 논의하는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제 4차 회의를 마쳤다. 하지만 전략자산 전개비용 분담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1차 회의 직후인 지난 3월14일 미주리주 공화당 상원의원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우리는 한국과의 무역에서 큰돈을 잃고 있고 군대(주한미군 주둔)에서도 돈을 잃고 있다”며 “지금 한국에는 3만2000명(의 미군)이 있다. 무슨 일이 발생할 지 두고 보자”고 했다. 한·미 FTA 재협상을 방위비 분담 협상, 주한미군 축소 등과 연계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북한 개발 비용 부담을 염두에 두고 서명을 늦추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 재협상 타결 발표 직 후 “서명을 북한과의 협상 이 후로 미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미·북 정상회담이 끝난 후에는 서명을 하지 않고 비핵화 후 북한 경제개발비용을 한국 등이 대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과 한미FTA 재협상을 연계시키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수입차에 20~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결국 철강관세와 마찬가지로 각 국별 협상을 통해 면제 등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경우 한국에 대해 한미FTA재협상 서명을 조건으로 별도의 추가 시장개방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