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 '샤프파워'에 눈치만 보는 한국
중국 정부는 중국에 취항 중인 항공사들에 별도 국가로 표시해온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바꿔 표기할 것을 요구해왔다. 세계 각국의 비판에도 표기 변경 시한을 7월25일까지로 제시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 취항 44개 항공사 중 18개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표기 방식을 수정했다. 아직 버티고 있는 26개 항공사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니 자국 국민의 반발이 걱정되고, 무시하자니 경영 타격이 우려돼서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골화하는 중국 중심주의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대만 표기 문제는 중국의 무소불위 ‘샤프(sharp)파워’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다. 샤프파워란 막대한 시장과 경제력을 무기로 기업이나 다른 나라를 위협하며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상대국을 억누르는 하드파워, 문화를 매개로 설득과 공감을 유도하는 소프트파워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지난해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이 중국이 자국 이익이 침해받는 것에 날카로운 힘으로 대응한다는 의미에서 처음 사용했다.

중국 정부가 자본과 시장을 앞세워 해외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샤프파워는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갖가지 사유로 중국 정부와 언론의 뭇매를 맞고 줄지어 사과했다.

미국의 메리어트호텔과 델타항공, 의류회사 갭, 스페인 의류업체 자라가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일본 생활용품 업체 무인양품은 카탈로그에 들어간 지도에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누락해 곤욕을 치렀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어구를 인용했다가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중국의 샤프파워 타깃에서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롯데그룹을 비롯해 중국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 기업이 보복을 당했다.

국가 위상에 맞게 대응해야

세계 각국은 중국의 샤프파워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대만 표기 수정 요구를 ‘전체주의적 난센스’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또 미국 항공사에 이 문제는 양국 정부가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핑계를 대라는 지침을 내렸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큰데도 중국의 간섭은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영국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은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의 투자를 규제하는 법안 제정을 검토 중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네팔 등도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명분 삼아 샤프파워 확대에 나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 눈치만을 살피는 모습이다. 대한항공 등 국내 항공사는 중국 정부 압박에 국가명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카테고리를 만들어 대만 수도 타이베이 등을 집어넣었다. 정부에 가이드라인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지침이 없자 내놓은 고육책이다.

한국은 중국의 세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중국에 대한 투자 규모는 싱가포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지한파 전문가들은 “한국은 중국의 부당한 압력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위상을 갖고 있다”며 “정부가 적극 나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dg@hankyung.com